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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요 언론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의 ‘명시적 동의를 원하는 정황’을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 9일(현지 시간)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한·미 무역협상 국면에서 한국에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공개적 동의 요구를 검토 중이다. 한·미 무역합의 관련한 미국 측 초기 초안에 “대북 억제 계속과 함께 대중국 억제를 더 잘하기 위해 주한미군 태세의 유연성을 지지하는 정치적 성명을 한국이 발표해 줄 것”을 요구 사항의 하나로 적시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존재 의미·방식을 둘러싼 새로운 관점이 미 고위 당국자 내지 전문가들로부터 언급되기 시작한 게 작년 봄이었다. 미 인도·태평양 전략과 보조를 맞출, ‘상호방위조약’이라는 한미동맹의 본뜻에 충실한 위상정립의 필요성도 제기된 가운데, 향후 한·미 정상회담 내지 그 이후 양국 안보협의 기회가 있을 때 중요 의제로 부상할 전망이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대북 억제를 주목적으로 삼아온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를 대(對)중국 억제 등을 위해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8∼9월 중 나올 예정인 트럼프정부의 새 국방전략 발표를 앞두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관측이 꾸준히 거론됐다. 8일 킹슬리 윌슨 미 국방부 대변인의 한·미 간 논의 중인 ‘동맹 현대화’란 “한반도와 그 너머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억지력 확보”임을 분명히 한 것 역시 결국 동일한 내용으로 읽힌다. 지난달 말 관세율 인하를 포함한 한·미 간 무역합의가 나올 때까지 미국 측이 이를 콕 찍어 언급했는지 확인되진 않지만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의 명시적 동의’ 획득 방안이 미 정부 내부에서 논의됐을 충분한 가능성을 생각할 때 한국 나름의 심리적·외교적 준비가 필요하다.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동맹 적극 활용이 트럼프 2기 정부의 주요 구상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의 수석 고문을 지낸 댄 콜드웰이 싱크탱크 ‘국방우선순위’의 제니퍼 캐버노 선임연구원과 작성해 지난달 공개한 보고서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연계한 논리를 드러낸 바 있다. ‘한국이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감축 옵션을 협박카드로 꺼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식의 풀이엔 완전히 달라진 국제 정세와 미군 재편 필요성을 무시한 감성적 관점이 두드러질 뿐이다.
콜드웰 등은 현재 약 2만8500명인 주한미군 중 지상 전투병력 대부분과 2개 전투비행대대 등을 뺀 약 1만 명만 남겨야 한다면서, 그 명분의 하나로 역내 전쟁 발발 시 한국 내 미군 전력을 활용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한반도 외부, 역내 다른 지역에서 분쟁 발생 시 미국이 한국에 있는 기지를 제한없이 사용할 접근권을 한국이 제공하지 않았다는 주장인데, 이 대목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한·미 간 ‘기지 사용’ 권리 보장 방식 즉 주한미군 지위협정(SOFA)의 해당 조항을 살펴야 한다.
SOFA 제2조엔 미국 군대가 한반도 내 기지 및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양국 간 협의를 통해 제공하도록’ 돼 있다. 노무현·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민주당 정부에 대한 미국 측 선입견이 ‘한국 내 기지의 자유로운 사용 보장 부족’의 우려로 이어졌을 수 있다. 콜드웰 지적처럼 SOFA에서 보듯 한반도 이외 모든 분쟁 때도 한국 내 미군 기지를 언제든 허용하도록 미리 약속된 적은 없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이미 노무현정부 시절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요구에 따라 불거졌고 한국 정부는 2006년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당시 한·미 공동성명엔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고 했다. 동시에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서 미국은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연루되진 않겠다는 한국 측 입장을 존중한다”고도 명시됐다. 다만 오늘날 지정학 구도가 그때와 전혀 달라졌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추진한 세계 미군 재배치 계획(GPR)의 핵심 목표란 유사시 미군 ‘기동성’의 극대화였다. 미·중 밀월 절정이던 당시 미국에겐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문제, 테러 대응, 동남아·남아시아 분쟁 위험이 더 큰 고민이었던 것이다. 콜드웰의 SOFA 해석은 국익과 직간접적 영향이 적은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장치로 한국 측에 유리했었지만 이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재해석이 불가피해졌다. ‘중국 방어’가 주변국 공통의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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