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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15일(현지시간) ‘알래스카’에서 만난다. 트럼프 집권2기 첫 미·러 정상회담이자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첫 양국 정상의 대면인 이번 회담으로 3년반 이어진 비극적 사태의 출구가 마련될지 관심이 쏠린다. 알래스카 현지 매체 ‘알래스카 비컨’처럼 미 정치권 내부 사전 조율이 없었음을 강조하며 회담의 돌발성을 부각한 시각도 있지만 “고도로 생산적 대화” “큰 진전”으로 소개한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와 푸틴의 3시간 회담 직후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미·러 정상 간 상당한 교감을 토대로 구성된 무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회담이 “제재 대신 대화”의 시사점을 담고 있으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초청 여부가 향후 논쟁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러 중립적 분석가들은 이번 미·러 회담이 형식상 선언에 그칠 가능성을 크게 본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EU) 지도부가 영토 양보를 전제로 한 평화를 강력 거부하고 있어 미·러 간 공식 대화가 열려도 서방 세계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 속에 서방 주요국들의 속수무책 역시 여전하다. ‘우크라이나 지원 계속’을 외쳐 왔으나 약속을 이행할 만한 실력과 국내 정치 현실이 받쳐주지 못한다.
2014년 주민투표로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반도,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등을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면 일단 휴전하겠다는 게 푸틴의 입장이다. 이미 루한스크 전체와 도네츠크 대부분이 러시아에 장악돼 있다. 작년 8월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주 점령은 우크라이나가 한때 이 지역 92개 마을(약 1250 km²)을 점령해 개가를 올렸으나 러시아 반격으로 물러난 상태다. 영토협상 카드용이었으나 전술적 실수로 평가된다. 이곳에 우크라이나 정예군 주력이 투입돼 무너짐으로써 돈바스 방어 등 총체적 전황을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쿠르스크 내 우크라이나군 일부 잔존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조차 러시아 측 승산이 대폭 강화됐음을 부인하진 않는다.
19세기 나폴레옹군대과 20세기 나치의 침공으로 궤멸적 피해를 입은 러시아로선 지형지물 전혀 없이 모스크바까지 뚫린 평야지대 우크라이나를 완충지로 하는 게 절실하다. 서유럽국가들과 우크라이나 강성 민족주의 세력에 편승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열망이 첨예하게 부딪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거듭 짚었다. 러·우가 피차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열릴 이번 미·러 회담이 결정적 돌파구로 연결되긴 어렵다는 관측 속에, 10일자 더타임즈·폴리티코 등에선 푸틴을 얼마나 강하게 압박 내지 회유할 수 있을지 트럼프의 협상술 개인기에 거는 기대감이 제기되기도 했다.
트럼프가 6일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이유로 인도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27일 발효 예정) 한 것은 러시아 돈줄 압박 의미가 크다. 다만 서방 침략에 시달린 러시아의 역사적 트라우마에 일정한 이해를 표한 최초의 서방 지도자라는 점에서 트럼프에겐 최소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차단해 러시아를 달랠 여지가 있다. 미국은 자포리자·헤르손 지역 반환을 러시아에 요구해 왔는데, 이와 관련한 푸틴의 전향적 태도를 트럼프가 이끌어 낼 경우 후속 협상이 탄력을 받게 된다. 러시아 측에선 벌써부터 트럼프의 ‘답방’을 통한 2기 두번째 미·러 정상회담까지 거론한다.
이에 러시아가 트럼프의 ‘대국 외교’(복잡다단한 국제 문제를 강대국 간 담판으로 끝내는 것) 본능을 자극한다는 해석과 ‘회담장소의 상징성’이 주요 외신들에서 지적된다. 알래스카가 1867년 미국에 매각하기 전까지 제정러시아 땅이었기에 영토 문제 특히 제3국 영토란 ‘신성불가침이 아니며 변경 가능하다는’ 암시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련 해체와 더불어 우크라이나 땅이 돼 졸지에 언어·문화 정체성을 부정당한 러시아계 주민들의 생존 위기, 그로 인한 돈바스내전을 국제 사회가 제대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도 미국의 역할이다. 러시아는 시종일관 우크라이나와 배후의 서방이 두 차례 민스크협정을 어겨 러시아계 주민 보호가 불가피했을 뿐 영토 욕심이 아니었다고 목소리 높여 왔다.
한편 알래스카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와 유럽 주요국엔 비상이 걸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푸틴 회담에 초대되지 못한 것에 “젤렌스키가 놀란 상태”라고 소식통들을 인용해 전했다. 미국 측에선 당초 미·러·우 3자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러시아가 거부했다고 한다. 영미권 주요 언론이 푸틴의 6일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 면담 시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하자 젤렌스키가 9일 오전 영상 연설에서 반발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인들은 땅을 내어주지 않을 것” “우크라이나 빠지면 죽은 결정”이라는 비판 모두 말뿐인 상황이다.
젤렌스키는 이날 밤까지 프랑스·덴마크·스페인·핀란드 등 유럽 정상들과 연쇄 통화하며 미·러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이 나지 않도록 유럽 공동의 뜻을 모으려는 노력을 이어 갔으나 실효성엔 회의적 전망이 우세하다. 한 서유럽 국가의 당국자는 FT에 트럼프 행정부 내 여러 시나리오가 상충하는 중이라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위트코프 특사, 심지어 트럼프 본인 생각에 모두 차이가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무슨 결정을 하든 우크라이나 무기·자금 지원을 지속한다는 공언 모두 하나같이 감당 못할 명분성 발언들이라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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