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수준의 인적 자본을 지닌 인도가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이 자본주의를 망가뜨렸나’의 저자 루치르 샤르마는 “인도는 도달할 수 없는 사회적 이상, 즉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느라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진정한 가망성, 바로 기회의 평등을 오랫동안 스스로 거부”한 때문으로 분석했다.
한국의 사정도 좋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오르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는다. 청년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샤르마는 전 세계적이랄 수 있는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 ‘올바른 자본주의를 가로막은 정부’라고 콕 집어 지명한다.
정부의 반복적 개입이 시장 기능을 마비시켰으며 구제 금융과 저금리는 부채 의존을 고착화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본은 이제 생산성이 아니라 정치권력을 따르게 됐다.
자본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다

“재무부와 연준이 영향력을 키우고 공짜 돈을 풀어대는 새로운 시대에 자본주의는 잠재력을 잃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부양책 덕분에 예상보다 적은 불경기를 겪으면서 역동성을 잃어버렸다. 구제 금융 때문에 각각의 불경기가 지닌 청산 효과는 약화되었다. 그에 따라 나쁜 독점 기업, 사실상 파산 상태인 기업이 더 많이 살아남았다. 결국 생산성 증가율이 갈수록 실망스러운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전반적인 성장 속도는 늦춰졌고, 대의를 향해 나아가는 자본주의 체제의 잠재력은 갈수록 약해졌다.”
그럼에도 좌파 경제학자들은 전 세계적인 불경기를 기업 권력을 등에 업은 ‘시장의 실패’로 단정한다. 저자는 시장이 실패한 게 아니라 정부의 개입이 문제라며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놔뒀다면 개인과 기업으로의 권력 집중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시장의 자유경쟁을 좌초시킨 것은 정부라는 것이다.
“경제는 복잡한 유기체와 같다. 경제 성장은 많은 요소에 의해 유기적으로 이뤄진다.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정부가 지출자, 채무자, 규제자, 경기 순환의 세밀한 관리자 그리고 금융 시장의 매수자 및 매도자로서 수행한 역할은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저자에 의하면 경제 성장은 전후 베이비 붐 및 생산성 붐으로부터 커다란 추진력을 얻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그 건강한 국면은 상당히 짧았다. 1950년대의 비교적 안정된 번영은 1960년대의 긴장으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특히 적자 지출이 촉진한 인플레이션을 통해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본이 흐르도록 가만 놔둬라

‘무엇이 자본주의를 망가뜨렸나’는 현대 자본주의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 과정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추적한다.
초반부는 자본주의를 압도하게 된 정부의 부상 과정을 다룬다. 대공황과 전후 복지국가의 확산,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며 정부는 점점 더 많은 권한과 자원을 시장에서 가져왔다.
저자는 특히 자유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를 내세웠던 레이건과 대처 수상 이후조차 정부 개입이 줄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작은 정부의 시대’라는 통념을 반박한다. 겉으로는 축소를 말했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경제를 조정하는 중심축이 되었음을 실증 자료를 통해 드러낸다.
중반부는 이러한 개입이 낳은 구조적 결과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반복된 구제 금융, 초저금리 정책, 과잉 유동성은 ‘좀비 기업’과 과점 구조를 고착시켰고, 자본은 생산성보다 정치적 보호가 강한 곳으로 쏠렸다.
이렇게 경쟁이 실종된 시장에서 부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자본주의는 역동성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본의 흐름이 왜곡되며 어떻게 시장 신호가 무력화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보여 준다.
후반부에서는 자본주의가 작동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스위스·대만·베트남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지속 가능한 모델을 분석하며 핵심은 ‘더 많은 정부’가 아니라 ‘더 나은 시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경쟁과 혁신, 생산성 중심의 자본 흐름이 복원되어야 자본주의는 다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이념보다 실제 정책과 구조의 선택만이 회복을 앞당긴다고 조언한다.
이 책은 단순한 이념 비판을 넘어 정책과 구조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왜곡과 그 회복 가능성을 살핀다. 또 경제사와 정치, 시장 메커니즘을 유기적으로 엮어 자본주의 시스템을 다층적으로 조망한다.
저자인 루치르 샤르마는 전 록펠러인터내셔널 회장이자 투자 기업 브레이크아웃캐피털의 창립자 겸 최고 투자 책임자다. 전에 그는 모건스탠리에서 신흥 시장 책임자 및 최고 글로벌 전략 책임자로 25년간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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