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옥칼럼] 신을 말하며 악마처럼 행동하는 ‘이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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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6-16 00:02:40

세상에는 신을 말하면서도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악마의 중얼거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영화 ‘이단자(Heretic)’의 미스터 리드(Mr. Reed)는 그 전형이다. 그는 두 몰몬 선교사 소녀 앞에서 길게 강론한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거짓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자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종교의 이름을 부정하면서도 그는 또 다른 종교, 자신을 신격화한 종교를 강요한다.

2024년 개봉된 미국의 심리 공포 영화 ‘이단자’는 몰몬교 선교사들이 이단으로 여겨지는 인물의 집을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믿음은 감옥이다.” 리드는 이 한마디로 선교사들에게 신앙을 의심케 한다. 또 “믿음은 독재이며, 진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로 그럴싸한 철학을 설파한다. 그는 ‘자유’를 믿음 위에 있는 절대적 가치로 강조하면서 두 선교사에게 스스로 생각하라고 말한다. 문제는 그의 모순된 행동이다.

리드의 행동은 철저히 독재적이다. 믿음을 자유의지로 선택하라면서, 실상은 선택지를 미리 설계해 놓고 그 외의 선택은 존재하지 않게 만든다. 믿든 믿지 않든 그가 제시한 선택지는 결국 지하실의 고통 속 시험대로 떨어지는 길이다. 신을 부정한 그는 자신이 신이 되길 원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교리의 틀 안에서만 ‘자유’를 허락했다.

그런데 이 기괴한 남자의 말과 행동이 놀랍도록 현실 정치의 작동 방식과 닮은 것은 종교와 정치가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이상 사이 외줄타기의 속성을 지니기 때문일까. 대한민국의 정치 무대에도 리드 같은 인물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입으로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이 설계한 이념의 틀 안에서만 사고와 판단을 허용한다. 그 틀을 거부하거나 비판하는 순간 음모론자라는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민주주의는 단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정당성’에서 비로소 그 가치를 얻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과정을 되묻는 목소리조차 억압당하는 분위기다. 예컨대 선거관리의 허점이나 개표의 불투명성을 언급하는 순간 음모론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힌다. 이 프레임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구성원들은 비판이 아닌 침묵을 강요받게 된다. 이는 리드가 말하는 ‘사유하라’는 말의 이중성, 즉 “내 방식으로만 생각하라”는 강요와 다르지 않다.

리드의 종교는 다름 아닌 ‘자기 숭배’였다. 자신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오만, 그리고 그 진리를 남에게 주입하겠다는 독선이다. 우리는 이미 정치판에서 이런 병적 자기 확신의 사례를 너무 많이 봤다. 신을 믿는 이보다 신을 자처하는 자가 더 위험하다. 지금의 정치권은 비판적 신념이 아니라 절대 신격화된 ‘우리만이 옳다’는 확신 속에 빠져 있다. 그들은 자신의 교리에 복속되지 않는 것은 모두 적이라는 논리를 갖고 있다.

정치는 신뢰의 기반 위에 선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는 의혹을 불신으로, 검증을 모독으로 몰아 간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조차 투표함 관리와 전산 시스템, 개표 과정 등에 관한 문제 제기 자체를 ‘국기 문란’으로 취급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일종의 교조 정치다. 이런 구조 속에서 국민이 더 이상 자유롭게 ‘의혹’을 제기하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주권자라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이 모든 것이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는 ‘선거’라는 장치가 더욱 투명하고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구조적 결함이 지적됐을 때 이것이 방치되거나 조롱을 받는다면, 우리는 리드가 만든 지하 감옥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처지와 다를 바 없다. 두 선교사가 스스로 하나의 문을 선택했다고 믿었으나 어느 쪽을 선택해도 이미 계획된 결과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결국 리드는 자신이 만든 함정에 빠져 목숨을 잃는다. 그가 조롱했던 믿음, 그가 가둬 두려 했던 존재들에게 심판받는다. 현실 정치에서도 국민은 리드 같은 존재들을 심판해 왔다. 우리가 역사를 말하는 이유다. 위선과 독선은 결국 자신의 무게로 무너진다. 물론 그 붕괴 전까지 수많은 국민이 통제와 검열, 낙인과 조롱 속에서 고통받을 것이다.

영화 ‘이단자’는 그저 흥미진진한 공포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독선과 조작의 정치에 대한 우화로 읽혀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떤 교리도 절대화되지 않아야 한다는 진실을 다시 배워야 할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진리를 말한다는 자들의 언행 속에 또 다른 감옥은 없는지.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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