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 전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센토사(Sentosa)는 말레이어로 ‘평화’를 의미하니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회담 장소로 제격이었다. 김정은과는 센토사섬의 원래 이름 ‘죽음의 섬(Pulau Blakang Mati)’이 더 잘 어울렸을 것이다. 김정은은 이복 형 김정남을 VX가스로 살해했고 고모부를 고사총으로 처형한 인물이니 말이다.
여하튼 정상회담 개최 전까지 김정은은 도널드 트럼프를 ‘노망난 늙다리(dotard)’라고 14세기 영어 표현까지 들먹이며 욕했다. 트럼프도 ‘주민을 굶주리게 하고 죽이는 미치광이(madman)’라고 되받아쳤었다. 이런 견원지간이 만났으니 2500명의 기자들은 신이 나서 취재했다. 스포트라이트 마니아인 트럼프도 고무됐고 회담 장소를 제공한 싱가포르 정부도 홍보 효과 때문에 수지맞았다. 김정은도 트레이드 마크인 ‘중력을 거스르는 헤어컷’을 과시했으니 면이 섰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 합의서에 비핵화가 명시되었어도 뭘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빠졌으니 말이다.
취재진 앞에서 김정은은 천연덕스럽게 “여기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라고 술술 얘기했다. 트럼프도 “오늘 회담이 엄청나게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면에서 김정은의 키높이 구두는 살짝 보였을망정 문재인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A4 용지는 없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대담 장면이었다.
올해 3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연락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북한은 “핵 강국(a big nuclear nation)”이고 김정은은 ”정말 똑똑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이는 평범한 말처럼 들리지만 북한이 그간 계속 핵 무기를 제조해 왔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즉, 트럼프가 북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보고받기에 나온 말이다. 대통령 일일정보 브리핑(President’s Daily Brief·PDB)을 통해서.
PDB는 미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 정보공동체를 대표하는 국가정보장(DNI) 주관하에 정보 분석관들이 전 세계 안보 현안에 대해 대통령에게 매일 오전 브리핑하는 제도다. 1952년부터 시작되었으며 800억 달러 예산의 미 정보기관들이 고도로 집약된 정보 분석과 비밀공작 관련 내용을 인쇄본이나 태블릿으로 대통령과 보좌진에게 전달하고 브리핑해 주는 시스템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첫 임기 동안 44%를 직접 브리핑받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직접 보고받았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주 1~2회 브리핑에 참석하고 PDB 보고서는 매일 읽었다고 한다. 정보기관을 불신하는 트럼프 대통령조차 2017년 1기 취임 초기에는 주당 평균 2.5회의 브리핑을 받았고, 임기 후반에는 주당 2회의 브리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권력 구조,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 대남 침투 및 해킹 등은 새 대통령에게 아주 생소한 분야일 수 있다. 감염병 대유행, 테러 등 안보 위협과 방산 및 원전 수출 등 국익 증대와 관련해 파악해야 할 정보의 양도 엄청나다. 새 대통령은 관련 정보를 직접 브리핑받음으로써 그 과정을 통해 관련 용어들이 체화되고 이를 토대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 등 외교 무대에서 폭넓은 견해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국가정보원 분석관들로부터 북한 및 해외 정보를 직접 브리핑받는 일은 현 민주당 정부만이 할 수 있다. 과거 미국이 중공과 수교 시 “닉슨 대통령만이 중국을 갈 수 있었다(Only Nixon could go to China)“는 말이 나왔다. 반공을 기치로 내건 공화당 행정부니까 중공과 수교가 가능했다는 얘기다.
국가정보원이 PDB 제도를 운영하면 정말 좋겠다. 우리 대통령도 높아진 국가 위상에 맞게 글로벌 현안을 해외 정상들과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기본 역량을 갖추고 북한 사정에 대해 정통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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