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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dom is Not Free” 잊힌 전쟁의 기억을 다시 꺼내다
6·25전쟁 75주년 ‘PROJECT SOLDIER’
전시 현장에서 본 기억의 복원
서울 SJ쿤스트할레, 6일~25일
장혜원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6-08 15:02:20
 
▲ 6·25전쟁 75주년 특별전 ‘PROJECT SOLDIER’가 6일 서울 강남구 SJ쿤스트할레에서 개막했다. 잊힌 무명의 참전용사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며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다. 전시는 25일까지 진행된다. 프로젝트 솔져 홈페이지 캡쳐
 
“기억하지 않는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세계 각지에 흩어진 6·25전쟁의 파편화된 기억을 모아 그것을 역사로 전달하는 것이 이 전시의 핵심이다.”
 
6일 현충일, 서울 강남구 SJ쿤스트할레에서 개막한 특별전 ‘PROJECT SOLDIER: 6·25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는 이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번 전시는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잊힌 전쟁’의 한복판에서 싸웠던 이들의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그 주인공은 무명의 참전용사들이다. 살아 돌아왔지만, 돌아온 뒤에도 잊혔던 이름들이다. 오는 2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참전용사들의 잊힌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다음 세대에게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값진 기회다.
 
▲ 6·25전쟁 75주년 특별전 ‘PROJECT SOLDIER’가 6일 서울 강남구 SJ쿤스트할레에서 개막했다. 잊힌 무명의 참전용사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며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다. 전시는 25일까지 진행된다. 사진=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6·25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은 올해, 전쟁의 기억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이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년 만에 벌어진, 16개국 약 194만 명의 참전군이 격돌한 국제전이었다.
 
2022년 5월 기준 생존 참전용사는 약 23만 명. 지금은 그 수가 더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억은 소멸되지만 기록은 남는다. 이 ‘사라지는 기억’을 사진으로 붙들어온 작가가 있다. 사진작가 라미(46, 한국명 현효제)은 지난 10년간 세계 곳곳을 돌며 6·25전쟁 참전용사를 촬영해왔다. “잊힌 전쟁의 잊힌 영웅들”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FREEDOM IS NOT FREE: 6·25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는 라미 작가의 지난 10여 년간의 여정을 오롯이 담았다. 사진 작품 300여 점과 참전용사들의 사연, 인터뷰, 설치예술 등을 통해 관람객이 ‘기억’과 ‘감사’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 사진=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전시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헬멧’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전달된다. 낡고 긁힌 철모에는 낙서처럼 보이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PFC Hillery’ ‘1950–1951’ ‘USMC’… 퇴색된 이 문장들이 전시의 중심이다. 방탄모는 단순한 생명 보호 수단을 넘어, 참전용사들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 후대에 전하는 ‘기억의 저장소’ 역할을 한다.
 
특히 인상 깊은 일화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던 참전용사의 이야기다. 헬멧을 다시 받은 그는 고개를 떨군 채 30여 분간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리는 잊어도 몸은 전쟁 당시를 잊지 못한 것이다. “제 전우의 피가 아직도 헬멧 안에 묻어 있는 것 같아요.” 전쟁은 끝났지만, 어떤 기억은 전쟁보다 더 오래 남는다.
 
전시장에서는 ‘쉘 쇼크(Shell Shock)’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오늘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불리는 이 병명은 당시에는 ‘군인의 약함’으로 취급됐다. 쉘 쇼크로 인해 포탄 소리만 들어도 몸이 반응하거나, 낮은 높이에서 무언가 떨어지기만 해도 숨는 참전용사들이 많았다는 후문이 전해졌다.
 
▲ 사진=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전시장 한켠, 흑백사진 속 군인이 휠체어에 앉아 있다. 미국 제3사단 소속으로 1951년 한국 땅을 밟았던 제롬 골더 참전용사다. 올해 94세인 그는 지난 3일, 74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서울 전쟁기념관 3사단 깃발 앞에 섰을 때, 그는 누군가의 부축도 없이 천천히 휠체어에서 일어섰다.
 
“제 친구들이 이 땅에 묻혀 있으니, 이 순간만큼은 일어서고 싶었습니다.” 그의 눈빛은 또렷했다. 그는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T-34/85 전차를 보며 “지금 나에게 바주카포를 갖다 달라. 저들은 다 겁쟁이들이다. 내가 다 격퇴시킬 수 있다”는 농담 섞인 말을 해, 그의 생생한 기억과 대단한 의지를 짐작하게 했다.
 
▲ 제롬 골더 참전용사. 사진=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감동적 일화도 전해졌다. 전쟁기념관에서 중년의 한 미국 여성 참전용사 방문객이 에게 다가와 참전 용사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참전 용사시냐”고 묻고, “어느 전쟁에 참전했느냐”고 물은 뒤 “코리아”라는 답에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하며 10분 가까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감동의 순간을 나눴다는 것이다.
 
터키, 콜롬비아, 영국, 미국, 튀르키예, 네덜란드, 프랑스 등 22개국 참전용사들의 모습은 곳곳에 담겨있다. 특히 에티오피아 강뉴 부대 신동사거리 사진은, 당시 병력은 가장 적었지만 연전연승을 거두며 전과를 올린 그들의 활약을 강조한다.
 
현장 관계자는 “흑백사진 속 그들은 과거의 기억을 미래 세대에 전달하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한다”며 “라미 작가가 ‘기억의 파편’을 모아 역사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사진 속에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 사진=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오늘날 90세를 넘긴 참전용사들의 초상화와 인터뷰 영상도 전시돼 있다. 퇴역 군복을 갖춰 입은 노병들은 여전히 전장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이 제복을 입는 순간, 전시는 멈추고 ‘살아 있는 역사’가 시작된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들의 기억 한켠에는 전 세계의 역사가 담겨 있다.
 
미군 및 해외 파병 용사들의 사진과 달리, 국군 참전용사들의 공간은 다소 소박하고 일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라미 작가는 국군 참전용사들의 사진 배치를 진행하면서 몇 가지 어려움도 겪었다고 한다. 해외 참전용사들에 비해 국군 참전용사들은 개인 소장품이 많지 않아 전시 구성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 사진=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전국 6.25 참전 유공자 회장인 김예철 선생님은 군 장군 출신으로 북부 전선에서 전투를 치른 경험도 있지만, 미군 참전용사들에 비해 소장품도 적고 기억을 선뜻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후문도 들렸다. 참전용사들의 거처 공간도 매우 협소하며, 수당과 연금 등 대우가 충분하지 않은 현실이 부각됐다.
 
장진호 전투 당시, 미 해병대는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서 물자 보급이 끊긴 채 고립됐다. 그때 미군에게 낙하된 물자는 의외였다. 초콜릿 캔디 ‘투시롤(Tootsie Roll)’이었다. 고열량 식품이었던 투시롤은 식량이자 의약품, 심지어 참호 보수재로도 활용됐다. 전투는 미군 역사상 가장 혹독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 장진호 전투 당시를 소개한 3층 전시실 모습 일부. 사진=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투시롤을 씹으며 2주간 혹한을 버티고, 이 캔디를 뭉쳐 방탄모의 구멍이나 무너진 참호를 메우고, 지혈제로까지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극한 상황 속 인간의 생존 본능과 재치를 보여준다. 차가운 전투식량을 먹고 설사에 시달리거나, 체온을 공유하려다 얼어붙은 시신들이 함께 굳어 있었다는 끔찍한 일화는 장진호 전투의 비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 사진=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디즈니가 전쟁 부대 패치를 디자인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미군은 유머와 상상력으로 전장의 공포를 이겨냈다. 전시 패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들이 지킨 건 국토가 아니라 삶의 품격이었다.”
 
라미 작가의 아버지 역시 베트남전 참전용사다. 1945년생인 그는 피난길에 미군에게 받은 허쉬 초콜릿의 맛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작가는 미국에 갈 때마다 아버지를 위해 허쉬 초콜릿을 사다 드리지만, “이 맛이 아니야”라는 말이 돌아온다. 전쟁과 피난의 고초가 더해져 초콜릿 맛조차 더 강하게 기억에 남은 것이다. 작가는 그 기억을 기리며 참전용사들에게 3파운드짜리 초콜릿을 제공하기도 했다.
 
▲ 허쉬 초콜릿과의 일화가 담겨진 사진들이 전시 된 1층 전시실. 사진=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도슨트는 “이 전시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로 기억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라며 “민족사관고등학교 학생들의 방문, 어린아이들의 감사 메시지, 그리고 작은할아버지의 전쟁 이야기를 찾아 나선 손자의 열정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이 전시는 그 당연한 진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이름 없이 희생된 병사들, 조용히 사라진 영웅들.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놓는 이 작업은 비단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이고, 우리 모두에게는 여전히 지켜야 할 평화다. 전시장은 25일까지 계속된다. 전시장 벽면에 새겨진 이름들은 말없이 서 있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가장 큰 목소리로 묻는다. “당신은 나를 기억할 것인가?”
 
“참전 마크가 있는 모자를 쓴 분을 보신다면, 꼭 인사해달라.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가 그분들에겐 평생의 위로이다. 참전용사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싸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라미 작가는 남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잊힌 이들의 기억을 오래도록 포착할 계획이다. 라미 작가가 이끄는 비영리 단체 ‘프로젝트 솔저’는 지금도 미국 50개 주를 돌며 캠핑카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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