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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한민국 군 간부들의 줄전역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출신 사령관들이 대거 구속되면서, 육사 출신 전역 지휘관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비상계엄은 군 내부의 깊은 상처를 드러내는 동시에, 오랜 기간 대한민국 국방의 중추 역할을 해왔던 육사 출신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크게 흔들었다. 주요 사령관들이 구속되면서 육사 출신이라는 자부심은 순식간에 ‘카르텔’이라는 비난으로 바뀌었고, 이는 현역 간부뿐 아니라 이미 전역한 지휘관들에게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는 ‘주홍글씨’가 된 육사 출신 장교들의 현실을 들어봤다.
‘특전사에 들어가 북한 김정은을 처단하겠다’는 어릴 적 막연한 사명감을 안고 육사에 입학한 박도현 국방시민모임 결의자 대표는 생도 2학년 때만 해도 특전사를 위해 새벽 4시부터 2시간씩 장거리 달리기를 할 정도로 사기가 충만했다고 한다. 그런 박 대표는, 육사 71기로 입교해 통신·재정 병과로 5년 조기 전역을 택했다.
박 대표의 조기 전역 과정과 육사 시절 개인적인 경험은 군 내부의 비합리적인 관리·운영 방식이 개인의 사명감을 어떻게 꺾을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2013~2014년 육사 내 비위 사건 발생 당시, 전체 생도에게 ‘연대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극심한 체벌성 조치가 가해지고 편의시설 이용까지 금지된 것이 발단이 됐다.
박 대표는 “현실과 이상은 달랐다”고 말한다. 그는 “3학년 때 육사 생도 해외여행 중 생도가 집단으로 숙소를 무단이탈해 술을 마시거나 마사지 업소를 찾았다가 징계위에 회부되는 등 좋지 않은 기사가 나오면서 연대 책임이라는 명목하에 가혹한 훈련을 받았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이어 “발에서 피가 나도 병원 이용을 금지하고, 편의시설 이용도 제한하는 등 사실상 인권을 짓밟는 수준의 대우를 받았다. 당시 사명감에 불타있던 나는 큰 실망감을 느꼈고, 결국 5년 차 전역을 고민하게 됐다. 그때 많은 동기들이 퇴교를 선택했고, 육사 역사상 가장 많은 퇴교생이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육사 생도 기초훈련 과정에서 발생한 비합리적인 지시는 군 내부의 병폐를 드러냈다. 박 대표는 “상급 부대에서 입교생의 강제 탈락을 지시했다가,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퇴교하자 ‘한 명만 더 내보내면 너희 평정 다 긁어버리겠다’며 말을 바꾸고 협박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비합리적인 조직 문화와 상명하복의 악용이 얼마나 쉽게 리더십을 붕괴시키고 하급자에게 심각한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해석됐다.
아울러 군 생활 5년 동안 초급 장교로서 임관한 박 대표는 온갖 부조리를 겪으면서도 '육사'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임무를 해야 했음을 고백했다.
그는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다양한 연휴에 자연스럽게 부대에 남아서 일해야 했다. 전역을 앞둔 타 출신들의 업무 전가에도, '육사'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 받아주며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처음으로 담배도 태우기 시작했다”고 토로했다.
박 대표는 통신 병과에서 1년 복무 후 전역을 위해 재정 병과로 옮겼는데, 육사 출신에 대한 자격지심을 가진 상급자들 때문에 또 다른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육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휴가도 제대로 못 가는 등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이다.
윤석열정부에서부터 문제되어온 초급 간부들의 급여 역전 현상과 과거부터 이어져 온 비합리적인 군 내부 문화는 간부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결국은 국방력이 약화한다는 비판은 현장에서부터 터져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낮은 급여와 과중한 업무, 병사보다 열악한 실질 처우는 군 간부 지원 기피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실제 학군장교 모집에서 지속적인 정원 미달이 발생하고 있다. 군에서는 초급 간부의 급여가 병사보다 적거나 비슷한 ‘급여 역전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과거 소위 시절 월 150만 원을 받던 시기에 병장의 실수령액이 200만 원(적금 등 포함)에 달하는 상황이 반복됐는데, 이는 병사를 지휘하고 관리해야 할 간부가 오히려 경제적으로 열세에 놓이는 기형적인 구조를 야기했다.
박 대표는 소대장이 병사에게 뭐라도 사주고 싶어도 병사가 ‘넣어두세요’라고 말하는 상황은 간부들의 심리적 박탈감과 자존감 저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지휘력 약화와 조직 분위기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간부와 병사의 보상 체계는 각자의 사명과 책임의 차이를 명확히 반영하여 설계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표는 “병사들 급여가 200만 원까지 인상된다는 소식에 주변 임관을 앞둔 후배들과 초급 간부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가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주를 이뤘다. 소대장은 병사들보다 훨씬 일찍 출근하고 늦게까지 일하는데, 급여가 역전되거나 비슷해진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예전에는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피자나 치킨을 사주고는 했는데, 이제는 병사들이 돈을 모아 간부에게 무언가를 사주고 싶어 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런 급여 체계로는 후배들에게 장교 복무를 권유하기 어렵다. 실제로 내가 전역한 후에도 학군 장교 정원 미달 문제가 심각하다고 들었다. 물론 병사들의 복지 혜택이 늘어나는 것은 좋지만, 그에 상응하는 간부들의 처우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박 대표는 병사와 지휘관은 군 생활에서 ‘책임감’이 달라 본질적으로 아예 다른 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병장은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면 되지만, 간부는 수많은 병사들을 관리하고 지휘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여 역전은 간부들에게 큰 박탈감을 안겨준다. 최소한 급여 역전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쟁점이 된 건 12.3 비상계엄 논란 등과 맞물려 ‘육사 카르텔’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증폭됐다는 것이다. 육사 출신 지휘관은 임관과 동시에 질투와 경쟁의 대상이 된다고 본 송철수 국방시민모임 공동 대표는 “내가 생도 시절부터 느꼈던 건데, 육사 출신들은 체력이나 군사 지식 등에서 일반 대학 출신들보다 월등한 경우가 많다. 임관 후 지휘관이 되면 당연히 육사가 장성급 지휘관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우수성이 특정 세력의 카르텔로 비춰지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군의 ‘정치적 개입’이 병폐의 핵심 고리라고 본 그는 “육사 출신들이 군의 핵심 요직을 차지하는 현상은 과거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논란은 군 내부의 능력 있는 인재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배제되고, 특정 출신이나 라인에 의해 진급이 좌우되는 문제와 연관돼 있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 시절 능력 있는 장군들이 대거 잘려나가면서, 원래라면 진급하기 어려웠던 인물들이 윤석열 정부 들어 요직에 앉게 된 경우가 있다”고 언급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위축된 육사 출신들의 입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 대표는 “육사 졸업생들은 사회에서 육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육사 반지를 끼고 다니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육사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어, 자신의 소속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3사나 학군은 임관 반지를 끼고, 사모임도 많이 갖지만 육사는 ‘하나회 콤플렉스’ 때문에 친목 모임도 대중 눈을 피해 몰래 갖는다. 모교가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대중의 시선 때문에 숨겨야만 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고백했다.
해법은 군의 정치적 개입 차단과 처우 개선의 중요성에 있다고 본 송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군의 인사 개입을 정치로부터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군 인사에 개입하여 능력과 무관하게 진급이 이루어지면, 군의 기강은 무너지고 유능한 인재는 떠나게 된다. 과거 청와대 행정관이 참모총장을 불러내 진급을 지시한 사례는 군 인사가 얼마나 정치에 휘둘렸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송 대표는 방첩사(구 기무사)의 기능 강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방첩사는 군 내부의 간첩 색출뿐만 아니라, 쿠데타 징후나 불온 세력을 감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기능이 약화되면 군은 정치적 외풍에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방첩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최소한의 견제 기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군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적 개입을 차단하고, 간부들의 사명감을 지켜줄 수 있는 합리적인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본 두 예비역 장교는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군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유능한 인재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헌신할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정치적 개입 없는 투명한 인사 시스템 확립, 간부들의 합리적인 처우 개선, 그리고 건강하고 민주적인 군 문화 조성이라는 근본적인 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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