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대한민국은 자유의 ‘맘보’를 출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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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욱 수습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5-23 00:02:30

1990년 홍콩의 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영화 ‘아비정전’은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3년 4월1일 만우절에 거짓말같이 세상을 떠난 장국영을 비롯해 장만옥·유덕화·유가령·장학우·양조위 등 당대의 홍콩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주인공 ‘아비(장국영)’는 구속받기 싫어하는 성향으로 인해 ‘소려진(장만옥)’ ‘루루(유가령)’ 등 여러 여성과의 사랑을 오래 이어가지 못한다. 이는 그가 어릴 적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뒤 양어머니에게 입양되었으며, 그 양어머니조차 아비를 온전히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비는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필리핀으로 향하지만, 친어머니는 집에 없는 척하며 그를 만나 주지 않는다. 주먹을 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난 아비는 기차 안에서 다툼을 벌이다 총에 맞아 사망한다.

‘아비정전’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홍콩 유명 배우들이 나와서, 줄거리가 완벽하고 미장센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영국령 홍콩에서 중국 홍콩 특별행정구로 편입된 1997년의 ‘홍콩 반환’을 앞둔 당시 상황과 홍콩인들의 마음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여자에게 머무르지 못하는 불안감을 가진 아비는 영국과 중국 그 어느 국가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당시의 홍콩과 같으며, 낳아 준 어머니와 길러 준 어머니 사이에서 겪게 되는 정체성의 문제 또한 당시 홍콩의 상황과 같다.

극 중에서 아비는 평생을 날아다니다 죽을 때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 ‘발 없는 새’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말한다. 아비는 그 새는 처음부터 죽어 있었기에 어디에도 가지 못했다고 얘기한다. 이는 정착하지 못하고 자유를 잃을 불안감에 휩싸인 당시 홍콩인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당시 중국 주석이었던 덩샤오핑은 ‘일국양제’를 제안하며 반환 이후 최소 50년간 중국식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적용하지 않고 영국이 홍콩에 만들어 놓은 정치·사회 시스템 등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홍콩은 중국 공산당 아래로 들어갔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중국은 반환 당시 작성한 ‘중영연합성명’의 내용을 대놓고 바꾸지 않는 선에서 홍콩에 대해 직·간접적인 간섭을 시작했으며, 자유를 침해당한 홍콩인들은 반발하기 시작했다.

친중파 홍콩 행정장관이 선출되기 유리한 간선제에 반발하여 일어난 2014년의 ‘우산혁명’이 대표적이며, 홍콩 내 범죄자를 중국에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에 저항해 일어난 2019년의 홍콩 민주화 운동도 그 한 예이다.

2019년 시위 때는 50만여 명, 당시 홍콩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인원이 참여하기도 하는 등 이들은 자유를 되찾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우산혁명 당시 또한 수천 명의 시민이 노란 우산을 들고 중국 공산당에 저항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이들은 중공에 제압당했다.

홍콩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하고, 시위하는 학생들을 무력을 사용해 무차별적으로 진압했다. 2019년 민주화 운동에서는 15명이 사망하고 26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1만 명이 넘는 인원이 체포됐으며, 3000여 명이 형사 고발당했다.

2020년 홍콩 정부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중공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대규모 시위는 이전처럼 일어나기 어려워졌으며, 홍콩인들은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할 권리를 잃었다.

‘아비정전’에서 소려진은 아비에게 반한 뒤 그를 붙잡으려 하나 아비는 그녀를 떠난다. 이후 총을 맞은 아비는 소려진을 그리워하며 눈을 감는다. 자유를 떠나보낸 홍콩인들은 자유를 그리워하며 중공에 무릎을 꿇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영화의 엔딩은 홍콩의 현실로 다가왔다.

작금의 대한민국 또한 홍콩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절대권력을 통해 행정부를 마비시킨 세력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가짜뉴스’ ‘극우’라고 매도하며 입을 막았으며, 급기야 언론인에 대한 구속 영장까지 청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절반이 지지하는 전 대통령을 여러 법리적 의문점을 남긴 채 탄핵했으며, 그를 지지했던 이들을 ‘내란 주동자’라며 처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선거에 대한 공정성을 입증하라는 목소리는 ‘음모론자’ 취급을 받게 됐다.

영화에서 가장 명장면으로 꼽히는 순간은, 아비가 가장 자유로움을 느끼는 순간 ‘맘보’ 춤을 추는 장면이다. 슬프게도 홍콩인들은 자유의 맘보를 추지 못했다.

대선을 10일가량 남겨둔 지금, 대한민국은 미래의 운명을 가를 기로에 서 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훗날의 대한민국은 과연, 올바른 선택을 통해 자유를 만끽하며 맘보를 출 수 있을 것인가.

이태욱 수습기자 twle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홍콩 #왕가위 #대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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