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다. 상륙지에서도 싸울 것이다. 들판에서도 싸우고 시가에서도 싸울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영화 ‘덩케르크(2017)’에서 철수 작전을 성공시킨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이 국민을 향해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여만 명의 영국·프랑스·벨기에·폴란드·네덜란드 5개국 병력을 영국 본토로 탈출시키는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재현한다.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패해 고립된 40만 명의 연합군 군인들을 안전하게 철수시키는 일은 훗날의 반격이 가능한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고립된 군인들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된다면 독일군은 유럽 전체를 점령할 것이 뻔했다.
덩케르크는 도버 해협과 맞닿아 있는 프랑스 북부의 작은 도시. 독일군의 공격에 밀린 연합군은 이곳에 일주일 동안 고립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영국군 사령부는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후송 작전을 진행한다. 그리고 1940년 5월28일부터 6월4일까지 계속된 작전 끝에 40여만 명의 군인을 영국으로 철수시키는 데 성공한다.
전투에서 패한 군인들을 후퇴시킨 것을 ‘거대한 승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로써 반격의 기반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철수 작전은 2차 대전의 전황을 바꾼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로 기록되었다.
영화는 고립된 병사들의 두려움과 공포, 필사의 노력으로 병사들을 철수시키려는 영국 정부와 군 수뇌부, 작은 낚싯배까지 동원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출 작전에 자원하는 영국 국민, 패전의 위기 속에서도 불굴의 의와 용기를 보여주는 지도자의 모습 등은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감동이 가득한 거대한 스펙타클로 만든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이 경선을 시작한 것은 드라마의 서막이었다. 12명의 입후보자 중 김문수가 최종 후보로 결정되는 과정, 이후에 단일화 협의를 몇 차례 진행했지만 결렬되자 국힘 지도부가 강제로 후보 교체 작업을 시도한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반전의 드라마는 이 같은 일의 찬반을 묻는 당원 투표에서 일어났다. 결과는 부결. 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정해 놓고도 다른 인물로 교체하겠다는 일련의 작업이 당원들의 표심 앞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당사자들은 물론 과정을 진행한 당지도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우파 유권자들, 사태 분석에 따른 선거 전략을 짜던 상대 당까지 모두가 경악했다. 각본 없는 대반전의 드라마를 연출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정당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선언하듯 증명했다.
특정인의 범죄 행위를 방탄하기 위한 정당, 지침을 내리면 작전하듯 무조건 추종하는 광신도 집단 같은 정당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성숙함을 보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격동의 드라마는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가 집중하게 만든 기대 밖의 성과도 거두었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실감나는 시간이었다.
대선의 선거전은 시작되었다. 오로지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승리를 만드는 일만이 남았다. 이것은 건강한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거대 야당은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한 이재명의 재판을 선거 후로 미루도록 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사법부에 대한 겁박,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는 사법부의 합작이 만들어 낸 일이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아예 재임 기간 중에는 재판을 중단해 버리는 법을 발의하고, 재정경제부의 국가예산 편성 기능을 대통령실 소속으로 두겠다고도 한다. 입법·사법·행정이 모두 한 사람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독재 왕조 국가를 만들겠다는 심산이 아니라면 이럴 순 없을 것이다.
침략군과 싸움을 하더라도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애국심만은 잃지 않았던 6·25 전쟁 때와도 다르다. 지금은 보수 진영의 빅텐트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자칫하면 낙동강 전선이 무너질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평화를 위협하는 적을 향해서는 국가의 총력을 모아 싸우겠다는 처칠 수상의 결단은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필요하다. 단일화 논란을 벌였던 한덕수 후보나 경선에서 결승까지 올라온 한동훈 후보도 몸을 던져 나서야 한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일부 홍준표 지지층이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빅텐트와 거리를 둔다면 이는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그동안의 말이 유권자의 관심을 얻기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다소의 억울함이나 할 말이 있더라도 더 큰 적 앞에서는 잠시 미루어야 한다. 누란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는 일에는 작은 힘도 보태야 할 만큼 지금의 상황은 긴급하고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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