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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21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국민의힘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은 크고 무겁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확립하고,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틀을 바르게 세워 나가야 할 시대적 사명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제1 야당이 건실해야 집권층의 ‘독선’을 막고, 국민 신뢰 속에 집권도 가능할 터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실망을 안기고 있다. 당 개혁 방안을 두고 제1 야당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국민의힘은 9일 의원총회를 열고, 전날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안한 9월 초 전당대회 개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대선후보 부당교체 진상조사 등 5대 개혁 방안에 대해 친윤(친윤석열)계와 친한(친한동훈)계가 논쟁만 벌였을 뿐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혁신적 결과를 얻지 못했다.
시급히 당을 재정비해야 하는데도 무기력증에 빠졌다. 국민의힘은 거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5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3대 특검법안(내란·김건희·순직 해병)을 일방 처리할 때도 사실상 손을 놔 버렸다. 1월31일 당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내란 특검법안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만 해도 독소 조항을 조목조목 비판했지만 이번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사퇴로 16일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그런데 친윤계와 친한계가 당권을 놓고 서로 싸우기만 하고 있어 당장 이재명정부 첫 인사청문회 대응도 벌써 ‘파장(罷場)’ 분위기다. 국회에 인사 청문 요청서가 이번 주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20일 이내에 청문회를 마쳐야 하는 시간표를 고려하면, 새 원내 지도부의 청문회 준비 시간은 2주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오로지 당권에만 욕심내는 이들이 적잖다는 현실이다. 차기 당권 경쟁에서 당내 이합집산과 권력 다툼이 본격화되면 국민의힘이 자중지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최근 국민의힘 상황을 빗대 ‘아사리판(무질서한 상태)’이라며 당이 대선 민심을 제대로 이어 가지 못하고 당권 경쟁에 몰두할 경우 ‘회생 불능’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민의힘 중진들은 ‘청년에게 인기 없는 정당, 특정 지역 정당’이라는 지적과 한계를 극복해야겠다.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계파 정치를 단호히 거부하고 오직 국민만 바라보는 한 팀이 되겠다고 천명해야 한다. ‘특정 지역 정당’이란 국민의힘이 여전히 영남권, 특히 대구·경북(TK)을 핵심 기반으로 삼는 현주소를 가리키는 것이다. ‘청년에게 인기 없는 정당’이란 지적은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강조한 맥락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고 이러한 지적을 당 쇄신에 반영하길 기대한다.
이는 곧 국민이 염증을 내는 정치권의 구태와 결별하는 일이다.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고 국민에게 내놓는 밥상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다. 세상은 제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지만 한국 보수정당의 운용체계는 여전히 20~30년 전에 머물러 있다. 당무 처리와 관련해선 시스템보다 리더의 지시와 의중이 우선이고, 차기 지도자를 자체적으로 키우지 못하고 있음을 뼈아프게 느껴야 한다.
사실 지금처럼 진보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정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선 ‘깨끗하고 따뜻한 보수’가 살아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보수진영은 새로운 인물과 정책으로 국민에게 다가서길 바란다. 합리적 진보, 개혁적 보수는 세상을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자양분이다.
국민의힘은 고정 불변의 도그마적인 자기 이념에 갇혀 사고하는 건 건전 보수의 자해 행위임을 직시하고 자정(自淨) 개혁에 나서야 할 것이다. 뼈아픈 대선 패배 성적표를 받아 든 국민의힘은 계파를 가리지 말고 전면 쇄신을 단행하는 게 요청된다.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의 균형을 다시 세우는 건전한 견제 세력으로,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대중정당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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