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아시아 국가인 파키스탄은 중앙아시아와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 최근 인도와의 군사적 충돌로 외신 보도에서 자주 접하게 됐다. 영국이 물러간 이래 약 80년간 파키스탄·인도는 무수한 테러 사건과 교전을 겪었으며 이 가운데 전쟁으로 간주된 것만 세 차례나 된다. 남·북한과 한·일 관계 정도의 불편함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파키스탄·인도 사이엔 종교 갈등과 영토 분쟁이라는 가장 치명적인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현실 만큼이나 인류사적 난제다. 이런 사례들에 비하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피할 수 있었던 비극에 속할 것 같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 때의 미국 반응을 생각하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는 이해하고도 남을 만하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는 교리적으로 각각 두루뭉술한 관대함과 근본주의적 엄정함이 격렬하게 맞부딪힌다. 유일신을 믿는 무슬림에겐 범신론적 힌두교가 ‘잡신들의 세계’로 보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들 두 종교는 기독교처럼 지난한 종교개혁을 거치지 않았다. 종교개혁이라고 통칭되지만 이는 자본주의 발전 속에 부상한 시민층이 생명·자산을 지키기 위해 세습 기득권층과 대결한 기나긴 우여곡절, 즉 교회의 �킥�(프로테스탄트)·구교(가톨릭) 분립 과정이었다.
‘프로테스탄트’란 말 자체가 ‘항의’라는 단어에서 나온 매우 정치성 농후한 단어다. 전쟁과 왕족들의 혼인을 통해 국교·국경선이 오락가락하던 유럽에선 구교·�킥� 어느 쪽이냐에 따라 시민들에겐 살해·자산 몰수·추방 등 위험이 상존했다. 같은 하느님을 받들면서 서로를 거부하다 하다 도달한 게 ‘상호 존중밖엔 답이 업다’는 결론이었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성립의 역사였고 그 핵심에 ‘신앙의 자유’가 존재하게 된 배경이다. 함께 정립된 정교분리 원칙이란 ‘개인 신앙을 국가 권력이 간섭하지 말라’이지 ‘개인의 정치 활동 금지’가 아니다.
파키스탄을 현지 공용어인 우르두어로 발음하면 ‘빠~끼스딴’에 가깝다. 펀자브(P)·아프가니아(A)·카슈미르(K)·신드(S) 등 주요 지역의 앞글자를 연결한 것이자, 페르시아어로 ‘정결한·신성한’ ‘땅’의 조합이기도 하다. 1947년 인도 독립 당시 무슬림들이 따로 (동·서)파키스탄을 탄생시켰으며 독립기념일마저 인도의 8월15일을 의식해 하루 빠른 14일로 삼았다. 다만 동·서가 2200여km(비행기 2시간 반~3시간 거리) 떨어져 있고 언어·문화 정체성이 달라 1971년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벵갈인의 나라)로 거듭났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