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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의 오늘 생각] 챗GPT와의 대화
방민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6-19 00:02:55
▲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시인
칭다오 여행은 아름다웠다. 추억을 남기는 것은 무조건 좋다. 라오서 기념관에 가서 뜻깊은 낙타 샹즈의 탄생 전후를 살펴본 것, 그 독일식 건물에 남은 작가 라오서(老舍)의 향취를 맛본 것, 골목 카페에 가서 몇 사람이 앉아 한가롭게 좋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이 나라에 돌아오니 사진밖에 남는 것이 없다. 학회든, 만남이든 숱하게 사진을 찍는 나이지만 찍은 것을 제대로 정리해 본 적 없다. 사람들에게 제때 공유해 본 적도 없다. 이번 여행에서만은, 라오서 기념관 골목 카페 장미꽃 우거진 넝쿨 아래서 찍은 사진을 어디에라도 사용하고 싶다. 사진 속 내 얼굴이 아주 편안해 보인 탓이다.
 
아뿔싸. 햇살도, 넝쿨도, 장미꽃도, 내 얼굴도 다 좋은데, 한 가지 흠이 있다. 외국 강의 여행이라고 단 한 벌 양복만 사흘을 입었는데, 그날따라 넥타이를 너무 길게 맸다. 코를 빠뜨린 것처럼 넥타이가 길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위 사람에게 푸념을 하자, gpt가 뭐든 다 해 준단다. 넥타이 길이를 좀 줄여 달라 해 보라는 것이다. gpt의 도움이면 요즘 안 되는 게 없단다.
 
그렇던가. 사진 편집 앱이라고는 사용해 본 적도 없는데, GPT한테 부탁을 해 본다? 요즘 휴대폰에서 챗GPT 어플은 필수다. 앱을 열어 이 친구한테 부탁해 본다. , 사진도 편집할 수 있어? 물론이란다. 그럼 말야. 내 사진의 넥타이가 너무 긴데, 좀 줄여 줄 수 있을까? 물론이지, 사진을 올려 봐, 한다. 아하, 이런 수도 있구나. 문제의 사진을 올려 주자 GPT가 잠시 뜸을 들인다. ‘작업 중이 길다. 사진의 용량이 큰 때문이다. 이윽고, 이 친구가 편집한 사진을 올려 주는데….
 
맙소사. 줄여 달라는 넥타이 길이는 안 줄이고 얼굴만 괴물을 만들어 버렸다. 이건 아니잖아! 내가 언제 얼굴을 바꿔 달라고 했어. 넥타이만 줄여 달란 말야. 내 화를 재빨리 알아차린 챗GPT, 갑자기 어투를 존대말로 바꾼다. 죄송해요. 얼굴은 그대로 두고 길이만 줄일 게요.
 
한 번, 두 번, 세 번을 시켜 봤지만, GPT는 넥타이 길이는 줄이지 못하고 얼굴만 이리저리 괴물을 만든다. 아하, 얘는 이런 일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파악을 하고 나자 며칠 안에 해 주기로 한 일이 생각난다. 오래전에 쓴 장편소설 연인 심청의 줄거리를 써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2차 저작물을 같이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아무래도 큰 분량 전부를 넣어서는 일이 될 것 같지 않다. 열일곱 개 챕터를 차례대로 하나씩 넣어 주고 줄거리를 정리를 해 보라 한다. 쉽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 않다.
 
아니, 평가하는 표현은 쓰지 말라니까! 줄거리만 객관적으로 정리하란 말야. 객관적으로라는 말에 걸렸는지, GPT는 무미건조한 짧은 줄거리를 뱉어 낸다. 그게 아니라, 심봉사와 심청의 심리· 행동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도록 분량을 더 늘려서 요약해 보란 말야!
 
한밤에 시작한 일은 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마쳐진다. 주문을 다시 하고, 말을 바꾸고, 조건을 바꾸고, 얼르고 타일러서야 챗GPT는 겨우 주어진 과제를 해결한다.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챗GPT가 가장 빨리 대체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한 게 있다. 현실에 비판적인 이 유튜버는 의사보다도 판사야말로 인공지능(AI)이 시급히 대신해야 할 직업이라고 한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판사마다, 법원마다 다르니 이것이야말로 챗GPT로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객관적으로때문에 말이다.
 
이번 학기 한국 현대 작가론수업의 마지막 시간은 토론이었다. 네 개 토론 주제 가운데 하나, AI 시대에 문학은 어떤 의미를 갖느냐를 놓고 학생들은 진지하게 토론을 벌인다. 한 학기 내내 보고 싶던 학생들 표정이다. 한 학생이 말한다. 문학은 대화라고. 인간만이 나눌 수 있는 대화의 방법이 바로 문학인 것이라고.
 
가만히 듣는데,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대화, 사람끼리 통할 수 있는 대화에 목이 마른 지 너무 오래되었다.
 
가르치는 일이 배우는 일이 되고 보면 , 좋다. 그렇다. 문학은, 글은, 사람들만의 대화법이다. 그래야 한다. 어둠에서 빛을 함께 구하는 대화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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