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첫날,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단독으로 추진한 ‘대법관 증원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정치권과 사법부 안팎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5일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린 문제”라며 공론장 마련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대법원으로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나, 민주당 주도로 전날 국회 소위를 통과한 대법관 증원법에 대해 “헌법과 법률이 예정하고 있는 대법원의 본래 기능이 무엇인지, 국민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개편 방향이 무엇인지를 국회에 계속 설명하고 협조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여러 가지가 얽혀 있는 복합적 문제로, 단순히 증원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며 “법원행정처를 통해 국회와 지속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날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는 민주당 단독으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해당 개정안은 대법관 정수를 현재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시행은 1년 유예 후 매년 4명씩 4년간 순차적으로 증원하는 부칙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제시한 사법개혁 공약 중 하나로, 대법원의 과중한 사건 부담 해소와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현재 대법원은 연간 약 4만 건의 상고 사건을 처리하며, 대법관 1인당 연간 3000 건 이상의 사건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 박범계 법안심사1소위원장은 “사법개혁특위에서 충분히 논의된 사안이며, 입법적 결단이 미뤄졌던 문제를 이제 결단한 것”이라며 “증원 속도도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사법부 장악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대법관 증원 외에 재판연구관 확충이나 전원합의체 구성 방식 등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며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상범 의원은 “법안심사 과정에서 반대 의견이 나온 민주당 의원들을 정회 50분 동안 설득해 일사천리로 표결 처리한 것은 향후 의회 독재의 서막”이라고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성명서를 통해 “대선 다음날 사법부 장악법을 밀어붙인 것은 경악할 일”이라며 “대법원을 이재명 정권의 방탄 기구로 만들려는 입법 쿠데타이자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충분히 숙의된 법안이며, 상고심 부담 완화와 국민 사법 접근성 향상을 위한 불가피한 개편”이라는 입장이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용민·장경태 의원은 각각 대법관 수를 30명, 10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으며, 이번 위원회 대안은 중간 수준인 30명으로 정리됐다.

한편,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논란은 단순한 사법행정 개선을 넘어, 향후 이재명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과 여야 간 권력 투쟁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히며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연한 실용정부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취임 첫날부터 여야가 ‘사법 개혁’을 둘러싸고 격돌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법사위 전체회의 일정은 아직 미정이지만,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 내 법안 처리를 목표로 추진할 방침이다. 관련해 조희대 대법원장은 “계속 설명하고 국회와 협의할 계획”이라며 사법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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