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에서 사소하게 화를 내거나 짜증내는 일은 흔하다. 개인주의화로 감정이 예민해지고 바쁘다 보니 감정의 자극점이 낮아져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뇌과학적으로 이를 ‘편도체 과열’이라 부른다. 편도체는 동물이 위험에 처했을 때 대응하는 개체 보존의 본능적 기관이다. 하지만 별일도 아닌데 쉽게 과열하니 문제다.
우리는 왜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내는 걸까. 강영진의 ‘갈등 해결의 지혜’에 의하면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다.
첫째, 이미 다른 일로 화가 나 있다가 폭발하는 경우다. 화난 상태에서 길 가다가 돌부리에 발이 걸리면 괜히 욕을 하며 냅다 걷어차는 것과 같다. 화는 대개 화나게 한 당사자에게 표출하지만 여건상 그러지 못할 경우 엉뚱한 대상을 찾게 되는 속성이 있다.
둘째, 다른 사람 눈에는 사소한 것 같아도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다. 제삼자 입장에선 “뭘 그런 걸 갖고…”라며 대수롭지 않게 치부할 수 있지만 듣는 당사자가 모욕감이나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거나, 그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면 심각해진다.
셋째, 누가 봐도 사소한 일로 자주 짜증이나 화를 내는 경우다. 심각한 욕구불만이나 성질이 까칠해서 그러거나 신경쇠약 등 질병이 원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분노를 어떻게 다루는 게 좋을까.
누적 매출 16억 달러를 돌파한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가 실사영화로 만들어져 최근 개봉되었다. 인간을 약탈하고 공격하는 드래곤과 수백 년 동안 전쟁 중인 바이킹족. 그러나 주인공 히컵은 드래곤은 죽여야 한다는 바이킹족의 불문율을 깨고 드래곤 투슬리스와 우정을 나누고 공존을 꿈꾼다. 우리들 몸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분노’가 어차피 존재하고 제거할 수 없는 드래곤 같은 거라면 피하지 말고 차라리 그 감정을 인정하고 공존하면서 잘 길들이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인간은 전쟁을 꺼리면서도 전쟁을 계속해 왔다. 분노도 그 촉발 원인 중 하나다. 손자병법에서는 “군주는 분노에 군사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고, 장수는 성난다고 하여 전투를 해서는 안 된다(主不可以怒而興師, 將不可以慍而致戰)”는 말로 지도자의 분노를 경계하고 있다. 철저한 계산과 전략으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게 전쟁인데, 하물며 분노가 개입하면 재앙이다.
사업에서는 분노를 어떻게 다루는 게 좋을까. 경영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하나가 그의 할머니이다. 그녀는 2개 층 임대를 준 치과의사와 심한 말다툼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그 치과에 치료하러 다녔다고 한다. 임대차 거래 관계와 치료 능력은 무관하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감정은 좋지 않지만 분노와 거래를 분리하여 거래 조건이 좋다면 계속 거래하는 것이다. 말은 맞는 말이지만 막상 실천하기에는 어려운 행동이다. 그런 할머니의 손자니까 경영의 구루가 된 게 아닐까.
가정에서 화 다루는 법도 생각해 보자. 그 한 가지로 하루이틀 정도 분노를 묵혀두는 방법이 있다. 예컨대, 부부 간 사소한 말다툼으로 감정은 상했지만 이튿날 말없이 아침상을 차려 준다거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저녁 부부모임에 동행하는 등 생활 루틴을 평소처럼 유지하는 것이다. 10년 이상 함께 살아왔다면 아마도 이런 조용한 ‘분노 하루 묵혀두기’를 경험한 부부가 적잖을 것이다. 부부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옛 명언들은 한결같이 분노의 속도 조절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 결과에 대해서도 기대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손자병법에서는 “분노는 다시 희소식이 될 수 있고 성냄은 다시 즐거움이 될 수 있다(怒可以復喜 慍可以復悅)”고 했고, 성경에서도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화내기를 더디 한다”고 했다.
‘분노’는 드래곤같이 두려운 존재이지만 한편으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계란과 같기도 하다. 자제력을 잃고 함부로 날뛰게 놔두면 쉽게 깨진다. 내 계란 하나가 깨지면 나로 한정되지만, 타인의 것을 깨뜨리면 수습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리더는 여러 개의 계란에 둘러싸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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