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다음 달부터 30가구 이상 민간 공동주택에도 제로에너지건축물(ZEB) 5등급 수준의 설계를 의무화하면서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에너지 절감 기술 개발에 불이 붙었다. 시멘트·철강 등 자재 제조부터 냉난방, 조명 등 운영 전반에 이르기까지 탄소를 대량 배출하는 건설업계는 정부의 탄소중립 기조 속에 발 빠른 대응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18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ZEB는 건축물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 등을 활용해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는 제도로 장기적으로 건물의 에너지 소비량과 생산량의 합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공건축물에는 이미 5등급(에너지 자립률 20∼40% 미만) 인증이 의무화됐으며 내달부터는 연면적 1000㎡ 이상 민간 건축물과 30가구 이상 공동주택도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민간 아파트 시장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업계는 초기 투자비용 증가와 분양가 상승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술 개발을 통한 시장 선점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완공 이후 건물 운영 단계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건설업 전 생애주기 배출량의 65%에 달하는 만큼 에너지 절감은 환경을 넘어 장기적 관리비 절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GS건설은 최근 자체 개발한 ‘에너지 절약형 조명 시스템’을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 자이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스템은 초고효율 LED와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스마트 제어 기능을 탑재해 기존 조명 대비 최대 50%의 에너지를 절감한다. 시간대별로 색온도와 밝기를 자동 조절하는 HCL(Human Centric Lighting) 조명도 선택 옵션으로 제공하며 에너지 절감과 함께 거주자의 건강과 감성까지 고려했다.
뿐만 아니라 GS건설은 무탄소 청정에너지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HD현대인프라코어, 미국 아모지(AMOGY)사와 협업해 암모니아 연료 기반 수소엔진 발전기 개발에 착수했으며 포항 영일만 산업단지에 실증용 발전 모듈 설치를 계획 중이다. 암모니아를 주입해 수소로 변환한 뒤 전력을 생산하는 이 방식은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아 친환경 전력 수요에 대응할 차세대 기술이다.
롯데건설도 제로에너지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건물 외장재에 태양광 패널을 통합한 ‘건물 일체형 태양광 발전 시스템(BIPV)’을 서울 본사 사옥에 설치해 시범 운영 중이며 바나듐 이온 배터리 기반의 에너지저장장치(VIB ESS)도 함께 적용했다. 해당 배터리는 물 기반 전해액을 사용해 화재 위험이 낮고 수명이 길어 실내 설치에 적합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롯데건설은 기존 시멘트 대비 200도 낮은 온도에서 제조가 가능하고 이산화탄소와 반응해 굳는 친환경 시멘트를 개발해 현장에 적용 중이다. 시멘트 제조 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동시에 생산된 이산화탄소를 재활용하는 기술로 이목을 끌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친환경 설비와 기술로 초기 비용 부담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관리비 절감과 브랜드 가치 상승 효과를 고려할 때 투자 가치가 있다”며 “ZEB 기술은 건설사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수단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다. 초기 분양가 상승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재생에너지 활용으로 향후 전기·난방비 부담이 줄고 친환경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입주 만족도가 높은 단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건설사들이 ZEB 기술을 확대 적용하면서 기술 고도화와 함께 에너지 절감 효과가 높은 기술 중심의 ‘ZEB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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