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등 세계 각국이 중국 간첩들의 암약으로 긴장하고 있다. 9일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필리핀 국가수사청(NBI)은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호주 연방경찰의 기술 지원·공조 수사를 통해 전날 수백 명 규모의 중국 간첩단을 적발했다고 보도했다.
필리핀 국가수사청은 중국 간첩들이 각종 사이버 범죄에 연루되어 있고 온라인 게임 업체로 유입된 중국인 다수가 간첩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한꺼번에 수백 명의 중국 간첩을 적발한 것은 전 세계에서 필리핀이 최초이다.
2024년 필리핀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간첩 사건이 있다. 그 주인공은 필리핀 북부 루손섬 타를라크주의 작은 시골 마을 밤반시 시장인 앨리스 궈(Alice Guo·당시 34세)이다. 2022년 6월 시장으로 당선된 그녀가 필리핀인으로 국적을 세탁하고 간첩 활동을 해 온 중국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지역 주민들은 그녀가 역대 시장들과 달리 진정으로 주민들을 위해 봉사했으며 친절하고 다정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햄과 스파게티를 나눠 주었고 학기가 시작되면 아이들에게 노트와 가방을 주었다. 그녀가 시장에 취임한 후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 마을에 맥도널드와 인기 있는 필리핀 체인점인 졸리비의 지점이 처음 문을 열었고 슈퍼마켓도 들어섰다. 대규모 온라인 카지노(포고·Pogo)도 유치했다. 지역 주민들은 마을이 발전하고 있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2024년 3월 대통령 조직범죄방지위원회(PAOCC)가 경찰과 함께 밤반 시청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온라인 카지노를 급습하여 강제로 억류되어 있던 202명의 중국인과 73명의 외국인을 포함해 700여 명을 구출했다. 이들은 온라인 연인으로 가장하여 사기를 치는 이른바 ‘로맨스 스캠(Romance Scam)’ 등 온라인 사기 활동을 하도록 강요받았고 인신매매·자금 세탁 등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장이었던 앨리스 궈는 문제의 온라인 도박장 땅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그녀의 사무실 바로 뒤였다. 거의 8헥타르(ha) 규모의 단지에는 도박 시설 외에도 식료품점·창고·수영장, 심지어 와인 저장고까지 있었다. 당국은 이 사건에 그녀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수사를 확대했고 그해 5월부터 필리핀 상원이 조사에 착수했다. 앨리스 궈는 상원 청문회와 국가수사청(NBI)에서 자신이 1986년 밤반 외곽의 탈락(Tarlac)에서 중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에서 태어나 돼지농장에서 자랐으며 홈스쿨링(재택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국은 그녀가 1990년 중국 푸젠에서 태어난 과화평(Guo Hua Ping)과 지문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상원 청문회에서는 과화평 명의의 중국 여권도 공개되었다.

당국에 의하면 그녀는 12세였던 2003년 1월12일에 중국 여권으로 필리핀에 입국했다. 17세 때 주민등록 관리의 허술함과 관료 부패를 악용하여 필리핀에 실재하는 앨리스 궈(1986년생)의 신분으로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았고, 이어 여권도 발급받았다. 교묘히 국적을 속이고 세탁하여 시장에까지 선출되어 중국을 위해 암약해 온 것이다. 그녀는 상원 청문회에서 간첩 등 각종 범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그녀는 "저는 밤반에 대한 큰 마음을 가진 필리핀인입니다. 저는 필리핀을 매우 사랑합니다. 중국 스파이가 아니에요"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2024년 6월에 열릴 상원의 후속 심리에 출석하기를 거부하며 자취를 감췄다. 후에 그녀가 그해 7월17일 돌연 말레이시아로 도주했음이 밝혀졌다. 이후 싱가포르에 한 달 정도 머물다가 인도네시아로 이동했는데 그해 9월3일 자카르타 수도 인근의 탕게랑에서 체포되어 필리핀으로 송환되었다.

필리핀 항소법원에 따르면 그녀는 1억9800만 페소(한화 50억3000만 원)상당의 현금 및 주식·150만 페소 상당의 보석류·36개의 은행 계좌를 보유하고 있으며 토지와 주택·12대의 차량·헬리콥터(후에 매각)를 포함한 12개의 부동산 등 거액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항소법원은 그녀가 해외 도주 직전인 2024년 7월11일 재산에 대한 동결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간첩·자금세탁·사기 등으로 기소되자 그해 8월 시장직에서 해임되었다.
작년 9월26일 아랍계 방송사인 알자지라의 영문 다큐멘터리 보도에서 앨리스 궈가 중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 소속 간첩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증언자는 인신매매와 사기·자금 세탁 등에 연루되어 태국에 수감 중인 도박계의 거물 중국인 ‘서즈 장’이다. 감옥에서 진행된 단독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2016년 말 필리핀에서 중국 간첩으로 일했으며 다른 간첩들을 모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앨리스 궈가 중국인 궈화핑이라는 내용이 담긴 파일을 방송사에 제시했다. 이 파일에는 앨리스 궈의 실명·중국 내 거주 주소·그녀 어머니의 이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그녀가 시장에 출마하면서 선거자금을 요청했다고 폭로했다.
그 앨리스 궈는 구금된 채 아직도 재판 중이다. 필리핀 당국은 그녀가 언제부터 중국 정부를 위해 간첩 활동을 해 왔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30대 중반에 불과한 그녀가 보유한 엄청난 재산 형성 과정도 불투명하고, 자신의 지역에 중국 및 동남아 대상 온라인 사기와 도박장 등을 개설하고 자금 세탁 등 중국과 연계해 활동해 왔다는 사실도 명백하다. 특히 이 사건은 필리핀과 중국이 남중국해의 산호초와 암초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 상황에서 발생하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각국이 중국의 스파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다방면에서 전개되는 중국 간첩의 한국 침투를 차단해야 함에도 국내 상황은 한심하기만 하다. 현행 간첩죄가 적국의 간첩 행위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 외국 간첩은 처벌할 수 없는데도, 야당은 간첩죄 개정에 반대하고 이의 핵심 억지 역량인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폐지해 버렸다. 한국이 ‘간첩 천국’이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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