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의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국민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그동안 쌓아 올린 국격이 일거에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전후 냉전 시대에 가장 안정적이고 뛰어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모범 국가라는 이미지가 얼마나 허술하고 공허한 것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이 선택할 길은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 외에 달리 대안이 없는 것 같다. 다만 현실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중차대한 국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인한 국가경제나 국민 삶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8년 전 대통령 탄핵으로 경험한 국론 분열과 진영 간의 격한 대립으로 치러야 했던 대가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라면 현재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대통령이 무모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내몬 야당도 결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권을 조기에 끌어내리기 위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정상적인 국가 운영이 되지 못하고 파행으로 가는 빌미를 제공한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자당 대표의 사법적 위기를 막기 위한 방탄 입법 및 탄핵, 그를 중심으로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 그들이 보여 주고 있는 갖은 편법과 꼼수에 대해서는 누구나 진절머리를 낸다. 과연 이러한 집단이 혹여 정권을 잡더라도 국가를 안정적인 궤도로 진입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국민이 많다. 그러나 반대편 현재 여당 구성원의 면면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에 희망을 걸기에는 정치판에 모인 이들의 능력과 자질이 국민의 눈높이에 크게 미달한다.
한국에서 성공하는 대통령보다 실패하는 대통령이 더 많은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대통령에 부여된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하고 보좌하고 있는 대통령실 인사들의 무소불위 행태 때문이다. 국가의 격과 국민의 수준이 수십 년 전인 과거와 엄청나게 달라졌는데도 현실에 걸맞지 않은 대통령 1인 전횡의 시스템이 여전하다. 그리고 절대 권력자 옆에 붙어서 그의 균형감과 판단력을 방해하는 무리에 의해서 초심을 망각하고 임기 말이 가까워지면서 실수를 연발하게 된다.
이제 우리 정치가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중심제에 대한 대대적 손질이 불가피하고 이는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내각에 권한을 대폭 위임하는 분권형 개헌이 더 시급하다. 실패 확률이 높은 대권(大權) 쟁취를 잠시 중단하고 정치 시스템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내는 정치적 지혜와 용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당장 급한 불은 민생과 국가 경제 근간의 동요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격하게 덮쳐 오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중단시켜야 한다. 이번 사건 이전부터 시작된 내수 위축과 수출·투자 감소 등 저성장 터널 진입 조짐이 더욱 뚜렷해지며 국가경제를 점점 더 미궁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특히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한국 경제에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중국산 저가 공세와 곧 시작될 트럼프발(發) 보호무역 파고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지경이다. 이런 판세에도 정치는 정권 쟁탈을 위한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이고, 정부는 중심을 잃으면서 무방비로 대내외 악재에 속수무책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염려하기보다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시간이 더 많다. 이럴 바에는 대통령이 없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장기간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면 공백을 효율적으로 메우면서 실패할 확률이 낮거나 실패하더라도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치 시스템을 개편하는 게 우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이 더 반성해야 하고 겸손해져야 한다.
사태가 이 정도로 치명적인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크고 작은 책임의 크기는 있겠지만 정치판에 있는 누구도 여기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되려면 성공할 수 있는 충분한 준비와 더불어 법적·도덕적 결함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인사가 막중한 자리에 올라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다시 국가가 정치 놀음에 함몰되면서 중요한 국익과 국가의 미래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국민도 진영 싸움에 합세하여 망국의 지름길인 포퓰리즘 유혹에 빠져들 수 있는 공간이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냉엄한 국제 정세와 이에 따라 실시간으로 닥치고 있는 국가적 위기를 경시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권이 바뀔 경우 국가 정책의 일관성을 무시하고 경제나 안보 노선의 급격한 수정으로 국가가 표류할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지구촌 경쟁국은 위험에 정면으로 노출된 기업들을 위해 ‘기업 우선주의’ 노선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우리도 헌정 중단이나 국론 분열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는 원인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현명한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권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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