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던 초임 교사 시절이었다. 어느 학부모 내외분이 우리 부부를 찾아와 사정이 급박해 자식을 혼자 두고 지금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며 1년간만 좀 맡아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날 이후 우리 부부는 1년 동안 그 아이를 재워주고 입혀주고 먹여주며 함께했다. 그때 그 아이가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몹시 궁금하다.
‘재워주고 입혀주고 먹여주며’의 ‘주다’는 ‘-어 주다’ 꼴로 쓰이는 보조동사이다. 본동사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때 주로 쓰인다. ‘-어 주다’는 띄어 쓰는 게 원칙이나 앞선 말이 두 음절 이내이면 ‘보여주다’ ‘맡아주다’처럼 붙여 쓰는 것도 허용된다.
그런데 본동사가 ‘제공하다’처럼 이미 ‘주다’라는 명확한 의미가 포함된 단어에 보조동사 ‘-어 주다’를 덧쓰면 어색한 겹말 표현이 된다. 따라서 ‘제공해 준 항공편으로 귀국했다’는 ‘제공한 항공편으로 귀국했다’로, ‘폭넓은 시야를 제공해 주었다’는 ‘폭넓은 시야를 제공했다’로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어문교열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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