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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을 되새기는 이 시기에 꼭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있다. 1952년 국회의원 선거 이래 한 달여 만인 7월 초 수습된 이른바 ‘부산 정치 파동’이다.
6·25전쟁을 ‘좌절된 민족해방전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또 20세기 중반 기적처럼 유라시아 끝자락의 대한민국이 자유공화 세계의 보루가 된 행운을 무시한 채 ‘외세 개입 탓에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관점이 유포돼 왔다. 이것이 학계·교육계·언론계에 공유될수록 부산 정치 파동 역시 비난의 대상일 뿐이었다. 새로운 연구가 없지 않았으나 소멸해 버린 모양새다.
국내 정치와 한·미관계, 미 군정, UN군 주둔 등의 외교적 조건을 고려해 전략적 권력 재편을 감행했다고 본 ‘부산 정치 파동의 정치사적 의미’(한국과 국제정치 제9권 제1호, 1993), ‘전시 정치의 재조명: 한국전쟁 중 북진 통일론과 두 갈래 개헌론의 관계’(한국정치외교사논총 제23권 제2호, 2002) 등 전시의 긴급 상황을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적극 활용했다고 분석한 것으로 그만이었다.
일련의 사태를 대한민국 체제 유지 차원에서 바라본 해설은 현대사 전문가 김용삼 팬앤마이크 대기자(전 조선일보 기자)와 약 90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 김성원의 ‘그라운드C’를 통해서밖에 접하지 못했다.
현재 일반적인 해당 관련 정보는 한결같이 이승만의 권력욕에 의한 야당 탄압으로 기술돼 있다. 이는 인민공화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난 20여 년 우리 사회 주류가 됐다는 점과 무관치 않을 듯싶다.
1952년 7월7일 제1차 개정헌법이 공포됨으로써 일단락 지어진 부산 정치 파동의 핵심은 국회 간선제였던 대통령 선출 방식을 국민직선제로 바꾸기 위한 ‘발췌 개헌’이자 이승만의 승부수였다.
임기 2년의 제헌국회 이후 1950년 제2대 총선이 치뤄졌는데, 전쟁으로 인한 결원을 메우고자 2년 후 5월30일 재·보궐 선거가 진행됐다. 당선된 절대다수의 무소속(60％) 의원들과 나머지 대한국민당·민주국민당 의원 대부분은 이승만에 비우호적이었다. 당시 사정은 좌·우익이 공존했던 제헌국회 상황 못지 않았다. 이승만이 자신의 재선과 이를 밀어 줄 정당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1951년 12월 자유당 창립에 돌입한 이유다.
그 이듬해 1월 정부 측 개헌안을 국회가 압도적 표차로 부결시키자 이승만은 (원외) 자유당을 내세워 ‘(직선제) 개헌안 부결 반대’ 민중대회를 개최하게 하고 국회의원 소환운동도 벌였다. 1952년 4월 민주국민당 중심의 원내 반(反)이승만 세력이 122명 연서로 내각제 개헌안을 내놓자 원외 자유당을 비롯한 18개 단체가 국회 측에서 내놓은 개헌안에 반대하는 전국정당투쟁위원회를 조직했다. 이로써 각각 내각제·대통령직선제를 향한 제2대 국회와 이승만정부의 전면 대결 양상이 펼쳐졌다.
그해 5월 처음 시행된 지방의회 선거를 자유당이 휩쓸면서 이승만은 지방의회와 원외 자유당이라는 두가지 국회 압박 수단을 확보하게 되었다. 부산 정치 파동의 결정적 도화선은 내각제 개헌파의 선봉이던 서민호 의원이 이승만 지지자인 현역 대위 서창선을 사살한 사건이었다. 국회가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석방 결의안을 가결해 서 의원이 풀려나자 7개 도의회가 국회해산요구를 결의하고, 지방의회 대표들이 반민의(反民意) 국회해산 궐기대회를 여는 등 대통령에 힘을 실어 줬다.
개헌안을 둘러싼 데모로 극도의 혼란에 빠진 것을 빌미로 이승만은 1952년 5월25일 자정 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 일부 지역에 공비 소탕의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며 그날 밤부터 내각제 개헌파 의원들이 구금되기 시작했다. 의원 40여 명을 태운 통근버스가 크레인에 끌려 연행되기도 했다. 사유는 국제공산당 관련 정치자금 유입이었다. 6월20일엔 재야 인사 60여 명의 반독재호헌구국투쟁위원회의 회의가 괴한들의 난동으로 저지되기도 했다.
이어 6·25기념식 때 민국당 의원의 사주를 받은 당원이 이승만 대통령 암살을 기도했다가 미수에 그치면서 내각제 추진파인 야당은 궁지에 몰렸고 전의를 상실해 간다. 지면 관계상 다 열거하기 어려운 이런저런 난리 북새통 끝에 1952년 7월4일 밤 발췌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했다(출석166·가163·기권3).
이에 따라 제정된 선거법에 의거해 1952년 8월5일 직접 선거로 이승만은 대통령에 재선됐다. 투표율 88.1%에 이승만 당시 후보의 득표율이 74.6%였으니 주요 경쟁자 조봉암(11.4%)·이시영(10.9%)에 비해 독보적인 국민 신뢰가 확인된 셈이다. 이게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일찌감치 끝장 났을 터였다.
‘국민의힘 주류=내각제 세력’이라는 평가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가운데 오늘날 대통령 중심제에 더 진심인 쪽은 더불어민주당인 것 같다. 미국을 제외한 주요 7개국(G7) 모두 내각제인 것은 봉건제 전통이 강한 유럽과 일본의 특수성 때문이며, 시민사회 역사가 짧은 나라에선 지방 토호와 중앙 엘리트들이 연대해 끼리끼리 잘먹고 잘살기 쉬운 제도로 전락하기 십상인 게 내각제다. 중앙집권 내지 대통령 리더십이 우세할 때 국가 발전을 경험한 우리나라로선 부러워할 제도가 아닌 것이다.
국민의힘이 6·3 대선을 앞두고 경선을 통과한 후보를 내각제 개헌 추진에 편리한 인물로 교체하고자 여론조사를 벌이다가 당원 및 시민들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정치사에 길이 남을 해프닝이다.
자당 소속 국가원수를 두 명 연속 탄핵소추·파면에 이르게 만든 사람들보다는 그나마 대통령제를 수호해 줄 쪽이 장기적으론 국익에 부합할지 모른다. 대통령제를 잘 지켜 반(反)대한민국으로 의심받던 전력을 얼마간 상쇄하는 게 제21대 대통령과 여당의 역사적 사명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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