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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전의 빚을 사진으로 갚는 사람, 작가 라미 현의 사진 기록 여정
라미 현 “참전용사들의 이야기, ‘75주년’은 끝 아닌 새로운 시작”
6·25전쟁 75주년 특별전 ‘FREEDOM IS NOT FREE’ 성료
6·25 참전용사, 마지막 기회인 75주년 특별전에서 만나다
“자유를 지키는 얼굴” 라미 작가 ‘프리덤 가디언즈’ 시작
장혜원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6-25 21:23:13
▲라미 현(본명 현효제) 작가가 25일 서울 강남구논현동 전시장인 SJ쿤스트할레에서 스카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전 세계 참전용사 2500명을 촬영하고 5500점의 액자를 전달한 ‘프로젝트 솔저(Project Soldier)’가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서울 강남구 SJ쿤스트할레에서 특별전을 열고 25일 막을 내렸다. 지난 6일부터 20일간 진행된 이번 전시는 1만 명 이상이 찾으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사단법인 프로젝트 솔저가 주최한 이번 전시의 정식 명칭은 ‘FREEDOM IS NOT FREE: 6·25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 특별전’. 암흑 속에서 전쟁의 소리를 체험하는 ‘인투 더 다크(Into the Dark)’, 태극기를 든 미군 병사의 사진, 참전용사들의 자필 메모와 유품 등은 관람객의 몰입을 이끌었다.
 
라미 현(본명 현효제) 작가는 상업사진가로 활동하던 2013년, 국방부 협업을 계기로 군인 사진을 찍으면서 참전용사 기록을 시작했다. 2016년 뉴욕에서 만난 미 해병대 참전용사 살바토르 스칼라토 씨의 자부심 가득한 얼굴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타국의 전쟁에 참전하고도 자랑스러울까?” 이 물음은 곧 그의 사명으로 바뀌었다.
 
그는 사비를 들여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참전국을 수십 차례 오가며 참전용사를 찾아다녔다. 페이스북 메시지, 거리 캐스팅, 무료 촬영 제안까지. 돈을 받느냐는 질문엔 늘 똑같이 답했다. “이미 75년 전에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는 생존 참전용사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사진을 찍고, 정성껏 제작한 액자를 전달했다.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한 생애에 대한 예우이자 존경이었다. 장비는 팔 수 있어도 참전용사의 삶은 시간이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사진 속 참전용사들은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지 않는다. 전우를 떠올리며 겁쟁이라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군복을 입고 찍힌 사진을 받아든 순간, 그들은 자신도 누군가의 자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눈시울을 붉히거나 조용히 사진을 가슴에 안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내 이름은 힐러리 아너. 1951년부터 52년까지 참전했다.” 헬멧을 머리에 얹은 채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린 미국 참전용사는 8년째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가, 낡은 철모 하나에 얹은 손끝에서 전장의 기억을 되찾았다. 사진작가 라미 현이 10년에 걸쳐 진행해 온 ‘프로젝트 솔저(Project Soldier)’는 바로 이런 기적 같은 순간들을 기록해 왔다.
 
전시는 단순한 사진 나열이 아니었다. 참전용사 개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 영상과 그들이 남긴 자필 메모, 장비, 유품, 심지어는 전장 속에서 쓰이던 만화책까지 함께 전시돼 관람객의 몰입을 도왔다. 일부 사진은 뒷면까지 투명하게 제작해, 그 위에 남긴 손글씨와 부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역사는 지명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작가의 철학이 구현된 구성이다.
 
▲(사)한국자유주의학회 6월 월례포럼 대체행사로 25일 전시장을 찾아 라미 작가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첫 번째 사진.) 두 번째 사진 왼쪽부터 최창규 학회장과 라미 현 작가, 민경국 상임 고문. 한국자유주의학회 제공
 
작가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역시 한국전 참전용사다. 하지만 그는 이 작업을 개인적 기억이 아닌 역사적 소명으로 여겼다. “역사는 지명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그의 말처럼, 전시는 참전용사 개개인의 삶을 오롯이 비추는 데 집중했다.
 
한국 참전용사들과 UN 참전용사 사이의 감정 결에도 주목했다. 한국 참전용사들은 ‘한’과 ‘서운함’을, UN 참전용사들은 ‘자유’와 ‘자부심’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는 “청년 시절 나라를 잃어봤던 세대는 자유의 소중함을 압니다. 이 땅을 지키고, 전쟁 후 재건한 뒤에도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참전용사들은 마음 아파하십니다”라고 전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미 참전용사 제롬 골더 씨는 전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소통하며 감사를 전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를 서울시청으로 초청해 명예시민증을 수여하기도 했다.
 
 
“한과 자유의 기억” 한국·UN 참전용사의 상반된 감정
75주년 특별전, 자유의 얼굴들 새롭게 그려나갈 것
  
스카이데일리와 이날 인터뷰를 한 라미 작가는 “‘75주년’이라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닙니다. 또 다른 시작”임을 알렸다.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얼굴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기록해온 라미 현 작가에게 ‘75주년’은 끝맺음이 아닌 새로운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80주년이 되면, 참전용사 선생님들 평균 연령이 거의 100세에 가깝게 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참전용사들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번 75주년은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는 후문이다. 단순한 사진전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만든 얼굴들’을 기억하는 연대기의 끝자락이자 새로운 기록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라미 현은 이 기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참전용사들을 직접 찾아 사진을 찍고, 그들에게 액자를 전달해 왔다. 그 모든 과정은 그저 ‘기록’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을 담은 ‘헌정’이었다.
 
▲라미 현(본명 현효제) 작가가 25일 서울 강남구논현동 전시장인 SJ쿤스트할레에서 스카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그는 지난 10년 넘게 ‘프로젝트 솔저’라는 이름 아래 국내외 참전용사들을 만나 그들의 기억과 삶을 아카이빙해 왔다. 2013년부터 이 작업을 이어온 라미 작가는 “6·25전쟁이 단지 숫자나 지명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임을 늦기 전에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75주년 프로젝트가 하나의 대미라면, 그가 준비 중인 다음 연작의 이름은 ‘프리덤 가디언즈(Freedom Guardians)’다. 6·25전쟁이 ‘자유를 준’ 이들의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전쟁 이후 그 자유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저도 군 복무를 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하는 수많은 분들이 있다”며 “군인, 경찰, 소방관, 국가유공자, 주한미군 등 그들의 얼굴과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참전용사들을 만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이 이룬 자유와 번영이 ‘스스로 일군’ 결과라는 점이었다”며 “청년 시절 나라를 잃어봤던 세대는 그 상실감이 뭔지를 안다. 이 땅을 어떻게든 지켜야 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망가진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자신들의 생애를 쏟아부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해낸 뒤,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것에 가슴 아파하신다”고 했다.
 
라미 작가는 한국 참전용사들과 UN 참전용사들 사이에서 감정의 결이 다름을 느꼈다고도 전했다. 라미 작가는 “한국 참전용사들은 ‘한’을 품고 살아오신 분들이 많아요. 자기 손으로 지킨 나라에 대한 고마움보다, 외면당했다는 서운함이 크다”며 반면 UN 참전용사들은 ‘자유’라는 대의명분으로 이곳에 왔고, 그 자유가 이 땅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걸 보며 자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70주년 때보다 75주년 전시가 더 많은 관심을 받은 것 같다는 말에는 “시간이 갈수록 잊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응원해 주고 있다”며 “참전용사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더 많은 이야기를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졌다”고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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