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물맹’은 온갖 식물에 둘러싸여 살아가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학술 용어다. 기술과 속도의 시대에 새삼스레 식물을 호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파코 칼보의 책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는 ‘식물지능’에 대한 가장 최신 연구 성과를 대중적으로 상세히 풀어낸다.
이동성이 큰 동물에 비해 땅에 뿌리내린 식물은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한 결과를 남김없이 모조리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식물은 우리보다 훨씬 오랫동안 적은 에너지로 지구라는 환경에 적응해 살아왔다.
“뇌라는 특정 기관과 신경세포가 없는 식물의 사고는 몸 전체에 ‘분산’되어 일어난다. 뿌리에서 잎까지 모든 부위가 정보를 감지하고 판단하며, 그에 따라 각자 반응한다. 이는 인지 중 절반 이상이 다리에서 일어나는 문어의 다중 의식 체계와도 유사하다. 인간 중심의 의식 모델이 중심 제어식이라면, 식물은 네트워크 기반 분산형 사고 체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AI와 인지과학이 주목하는 새로운 지능의 가능성을 자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구현하고 있었다.”
식물이 내리는 결정이 단순했다면 복잡한 지구 생태계 속에 이토록 풍요로운 종 다양성이 일구어질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인식 전환은 기술에도 영향을 미쳐 식물처럼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자라나는 생체모방 로봇 ‘그로우봇(Growbot)’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인간의 뇌를 모방한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인류의 새로운 터전을 찾아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과학·기술 시대에 다시 이 땅 위의 식물을 호명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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