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 위에 붓과 실의 조화로운 독창적 기법으로 섬세한 시간을 직조해 온 김보라 작가의 초대전이 1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광화문 ‘갤러리 내일’(박수현 대표)에서 열린다.
작가는 시간의 흔적과 사라진 삶의 조각들을 실과 종이로 엮어내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그는 해어진 천 사이로 비집고 나온 실밥 같은 애환, 긁힌 자국 속의 기억, 허름한 골목과 녹슨 철문에 남은 삶의 흔적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오래된 얼룩에 구멍을 뚫어 시간을 새기고, 허리가 휜 사연을 밟아 새로운 길을 낸다.
바늘귀에 걸린 바람들을 빗금처럼 오늘로 되살리고 내일로 잇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간의 깊이와 삶의 결을 담은 다양한 신작들이 선보이며, 작가의 오래된 이야기를 기록과 동시에 회복의 메시지를 관람객에게 전달한다.
성주산 줄기 끝에 자리한 김보라 작가의 작업실. 높은 언덕 위 낮은 지붕, 삐뚤어진 창 너머에는 누에가 갉아먹은 뽕잎처럼 생동하는 화면, 그림 같은 것이 무심하게 뒤척이고, 박음질한 실의 파동이 파르르 떨린다.
작가는 카메라로 벽을 찍는다. 구멍(셔터)을 뚫고 들어온 빛의 흔적(사진) 위에 물감을 칠하고 바느질을 한 후 벽에 붙이거나 바닥에 놓고 한참을 바라본다. 그 위에 다시 물감을 칠하고 바느질하기를 몇 차례, 사진은 그림이 되고 시(詩)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벽의 기억’은 벽을 촬영한 사진 속으로 들어온 후 실이 직조하고 물감이 칠해져 ‘기억의 벽’으로 변형되었다. 애초에 김보라가 찍은 사진은, 사진의 가능성을 사진의 불가능성으로 증명하며, 나중에 남은 것은 무수한 움직임의 순간뿐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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