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오늘 생각] 청도(靑島)에서 만난 나의 라오서(老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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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6-12 00:02:55

인생에서나 소설에서나 3은 필연을 가리키는 숫자다. 한 번은 일어날 법하다. 두 번까지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루에 같은 사람을 ‘우연히’ 두 번 만날 수 있다. 세 번 만난다면 그것은 필연이다. 어떤 사람의 인생에 반드시 같이 가는 존재다.

참혹한 서울을 뒤로하고 황해 건너 칭다오(靑島)로 향했다. 배에 올라 하룻밤 꼬박 풍랑을 탔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비행기편이었다. 작가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강의를 명분 삼은 것이었다. 꼭 어디로든 떠나야 할 시점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시간 안 되는 공중비행 속. 일제강점기 때 작가 백신애의 수필을 펼친다. ‘청도기행’(‘여성’, 1939.5)은 작가 백신애의 삶의 마지막 국면의 기록이다. 이때만큼은 칭다오를 청도라고 부르고 싶다. 1938년 9월 하순 청도로 간 백신애는 스무 날을 머물렀다 상해로 갔다. 오빠 백기호를 거기서 만난다. 그 직후 백신애는 이혼도 한다.

현재의 청도는 깨끗하고 넓다. 신공항에서 시가지로 들어가자마자 여장 풀고 요기를 때우고 강의에 나선다. 동행하신 어른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말씀하신다. 나는 ‘별들의 고향’이다. 주인공 ‘김문오’와 비극의 희생양 ‘오경아’는 작가 이상의 ‘날개’의 주인공 ‘나’와 ‘아내’의 관계처럼 분신이라 말한다.

다음 날, 홀가분하다. 나는 굳이 백신애가 배를 타고 도착했을 법한, 그리고 거닐었을 법한 청도만의 해변을 찾고자 한다. 숙소에서 거리가 있는 듯해도 빠듯한 일정에 달리 가고 싶은 곳이 없다. 어느 선생님이 그쪽에 라오서의 기념관이 있노라, 무심결에 말씀하신다. 귀가 번쩍 뜨인다.

라오서(老舍, Lao She)는 중국의 이름 높은 작가. 본명은 수칭춘(舒庆春)으로, 만주족이다. 그를 ‘정홍기(正紅旗)’ 사람이라 함은 만주족 신분을 가리킴이다. 정홍기란 만주족의 전통적 군사 편제인 ‘팔기군(八旗軍)’의 하나다. 베이징에서 태어나 베이징에서 세상을 뜬 이 작가는 장편소설 ‘낙타 샹즈(骆驼祥子)’로 이름 높다. 낙타라는 별명을 가진 인력거꾼 ‘샹즈’의 인생을 그린 작품이다.

나로 말하면 ‘낙타 샹즈’를 일찍이 다 읽었어야 했다. 라오서와 나 사이에 얽힌, 이 모종의 ‘필연’을 생각하면 말이다. 내가 누구라고, 라오서에게 내가 필연이 될 수 있나. 이것은 순전히 내게 라오서가 그렇다는 뜻이다.

아. 오래도 되었다. 때는 1996년 9월 둘째 주쯤. 진천페리호, 인천에서 텐진 가는 배, 삼등 선표를 끊고 무작정 중국행에 나섰었다. 1박2일 수심(愁心) 깊은 바다 건너 텐진으로, 마이크로 버스로 번개치는 밤비 뚫고 두 시간 달려 베이징의 한 ‘아파트’ 민박집으로 들어섰었다.

그때, 혼자, 정처없이! 자금성, 천안문 근처를 배회하던 나의 눈에 들어온 것. 어느 골목 어둠 속에 세로로 간판이 붙어 있던 ‘라오서 찻집(老舍茶馆)’. 그러나 내가 본 것은 환영이었나. 지금 연혁을 찾아보면 “1988년에 건설, 현재 영업 면적은 2600여㎡에” “다기능 종합성 대형 찻집(茶馆)”이라 한다. 그러나 나는 분명 어둠 속의 작은 ‘라오서 찻집’을 만났었다. 50위안을 주고 맨 끝 식탁에 앉아 사람들 어깨 너머로 경극 구경을 했었다.

코로나19가 밀려오기 직전, 베이징에 다시 갔을 때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고 오로지 그 라오서의 ‘찻집’에만 집착해 있었다. 이것은 나의 두 번째 라오서였다.

이제 세번째 만나는 라오서. 칭다오의 라오서 기념관에 들어 쓸쓸히 그와 나의 인생을 생각한다. 라오서의 불행한 말년의 죽음을 생각한다. 나의 아이러니한 ‘망명’을 생각한다. 칭다오에서 라오서는 산둥대 교수로 있으면서 독일식 저택에 머물며 ‘낙타 샹즈’를 썼다. 그러면서 인생의 가장 행복한 몇 년을 보냈다. 그때 어찌 자기의 말로를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으랴.

한 사람의 삶과 시대의 흐름과 그가 낳는 문학은 숫자 3이다. 필연이다. 급격히 우울해진다. 그처럼 한없이 민중적인 작품을 쓴 라오서는 문화혁명의 물결에 부딪혀 난파하고 말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고도 죽음에 들었기 때문에 받을 수 없었다던가. 한 사람의 삶과 시대와 문학은 다 무서운 것이다. 숫자 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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