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 현장은 흔히 공사 중이라는 가림막 하나로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진다. 그 뒤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어떤 기술과 책임이 동반되는지 관심은 미미하다. 많은 이가 대형 공사에 대해서조차 ‘기계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넘긴다. 그러나 지난 5일 밤 용인시 복선전철 공사 현장에서 벌어진 천공기 전도 사고는 이런 안이한 인식에 찬물을 끼얹는다.
사고 당시 넘어진 천공기는 무려 길이 44m, 무게 70.8t에 달하는 대형 장비였다. 이 천공기는 지반을 뚫는 데 쓰는 중장비로 건설 현장에서 가장 무겁고 까다로운 기계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장비가 작업 후 방치되어 있다가 중심을 잃고 인근 15층 아파트 건물로 쓰러졌다. 그 충격으로 8층부터 15층까지의 외벽과 베란다 창문이 파손됐고 주민 150여 명이 긴급 대피해야 했다. 자칫 인명피해로 이어졌다면 결과는 참혹했을 것이다.
이 사고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거대한 장비 하나를 제대로 세워 두지 못했다는 것은 수많은 절차와 점검, 책임이 생략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뜻한다. 이는 대형 공사가 얼마나 정밀한 계획과 관리,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천공기와 같은 대형 장비는 지반 상태, 날씨, 작업 위치, 인근 구조물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배치되어야 한다. 특히 작업이 끝난 후에는 안전한 고정과 관리가 필수다. 그런데 사고 당시 해당 장비는 공사가 일시 중단된 상태로 현장 인근에 대기 중이었다.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공사들은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특히 도시 한복판에서 진행되는 철도, 지하, 초고층 공사는 과학과 기술, 사람의 경험이 총동원되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무거운 자재를 공중에서 다루고 지하 수십 미터를 뚫어 가며 지반과 구조물을 연결하는 이 작업 과정에선 사소한 오차 하나가 다수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일반 시민은 물론 발주기관이나 감독기관조차 이런 복잡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기(工期)를 줄이고, 예산을 줄이고, 인력을 줄이라는 식의 안일한 태도는 결국 사고로 이어진다. 이번 사고의 시공사인 DL건설과 발주처인 국가철도공단 역시 사고 발생 직후가 되어서야 수습에 나서는 등 안전관리의 허점이 드러났다.
우리는 사고 이후 반복되는 똑같은 말들을 듣게 된다. 구조에는 이상이 없다, 2차 피해는 없다, 빠르게 복구하겠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질문은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제는 무관심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공사들이 우리 일상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인식하고 그 작업이 얼마나 고난도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정책 결정자와 발주기관, 시민은 공사비 절감이나 빠른 개통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안전과 책임의 무게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대형 천공기가 아파트를 덮친 이번 사고는 한국 사회가 건설 현장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앞으로 어딘가에서 재현될지 모른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건설을 기계가 하는 일로 여기지 말고 사람의 책임과 기술로 진행하는 생명의 작업으로 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시각을 바탕으로 안전을 설계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안전은 눈에 띄지 않지만 우연히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