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과 로마는 어떻게 제국을 만들었을까. 몽골은 불과 50년 만에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고, 로마는 붕괴하기 직전까지 동맹국의 충성을 이끌어 냈다. 몽골군과 로마군은 막강했다. 그러나 싸울수록 강해지는 비밀에 대해선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몽골군은 싸울수록 병사 수가 늘었다. 사망자가 생겨도 병사가 늘어나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칭기스칸 테무친(1162~1227)은 적군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항복하고 충성하면 아군으로 받아들였다. 테무친은 충성을 갖추면 민족과 신분조차 따지지 않았다. 관용을 앞세운 몽골군은 전쟁할 때마다 부대를 늘렸고 군사 기술도 흡수했다. 금(金)을 멸망시키면서 획득한 화약과 공성 무기로 바그다드를 함락했고, 중동에서 얻은 투석기 회회포를 활용해 송(宋)의 견고한 성을 무너뜨렸다. 칼과 활로 싸우던 몽골군은 화약과 공성부대까지 동원하며 동유럽을 휩쓸었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총칼로 시작했으나 전투기와 미사일로 무장한 셈이다.
로마도 몽골처럼 다른 민족을 차별하지 않았다. 로마는 이민족조차 로마 시민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노예 자식에게도 시민권을 주었다. 로마는 오늘날 프랑스(갈리아)와 영국, 스페인, 시리아를 침략했다. 하지만 갈리아 사람 등은 오히려 로마인이 되길 바랐다. 로마군이 도착한 곳에선 새로운 인재가 끊임없이 로마 지배층으로 흡수됐다. 피정복민이 스스로 로마를 따르다 보니 로마는 지중해를 둘러싼 땅을 모두 지배하는 제국으로 성장했다. 로마는 전리품도 동맹국과 나눴다. 주변국의 자발적인 복종은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하게 만들었다. 이런 까닭에 로마는 여러 전쟁에서 패배로 시작했으나 결국 승리했다.
고대 지중해에는 아테네도 있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인 아테네는 자유와 자치를 소중하게 여겼다. 아테네는 민주정치와 공화정치를 꽃피웠다. 하지만 아테네는 이방인을 통제했다. 자유를 추구했던 아테네는 그들만의 자치를 추구했다. 아테네와 달리 로마는 정복한 나라와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개방과 관용을 앞세운 로마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재를 등용해서 제국이 되었지만 통제와 자치에 매달린 아테네는 폴리스(도시국가)에 머물렀다.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오스(기원전 200~118 추정)는 이웃나라 로마의 역사를 다룬 ‘히스토리아’를 썼다. 메갈로폴리스의 장군으로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에 참전한 폴리비오스는 로마군에 볼모로 붙잡혔다. 로마로 끌려간 폴리비오스는 로마가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점령하는 걸 지켜봤다. 그리스는 망했는데 로마는 왜 강해졌을까. 폴리비우스는 로마가 지중해 패권 국가가 된 이유로 권력 구조를 꼽았다. 집정관(군주정치)과 원로원(귀족정치), 호민관(민주정치)이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룬 덕분에 로마는 폭군정치와 과두정치, 중우정치로 빠지지 않고 제국으로 성장했다.
로마와 몽골이 고대와 중세를 대표하는 제국이라면 미국은 현대를 대표하는 초강대국이다. 로마부터 몽골을 거쳐 미국에 이르기까지 초강대국은 개방과 관용을 통해 다양성을 추구했다. 독일과 일본도 부국강병에 성공했지만 순혈을 고집한 끝에 초강대국이 되진 못했다. 그러나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는 관용이 넘쳤다. 미국 헌법은 인종과 성별·피부색·국적·종교 등 그 어떤 이유로든 차별을 금지한다. 독일보다 과학기술에서 뒤졌던 미국은 1930년대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을 받아들여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국이 되었다. 로마와 몽골처럼 미국도 인종의 용광로였다. 민족과 종교를 따지지 않았기에 뛰어난 사람들이 미국에 정착했다. 군사력과 경제력은 물론이고 문화적인 매력까지 갖춘 셈이다.
미국이 달라졌다. 이민자의 나라지만 이민을 막는다. 자유무역 대신 보호무역을 선택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개방이 아닌 폐쇄를 선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으로 미국에 온 범죄자를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범죄 이력이 없는 사람이 체포되고 영주권을 가진 사람조차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붙잡히고 있다.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협박하자 우방국마저 미국을 껄끄러워한다. 로마 동맹국이 스스로 로마를 위해 싸웠던 것과 달리 미국 동맹국은 미국에 등을 돌리고 싶은 심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버드대에 외국인 유학생 등록을 취소하라고 협박까지 했다.
제374회 졸업식이 열린 5월29일 하버드대. 앨런 가버 총장은 “잘못된 확신은 진정한 잠재력을 빼앗는다”고 말했다. 가빈 총장은 “많은 사람이 인정하길 꺼리지만 절대적 확신과 의도적 무지는 동전의 양면이다”면서 “그 동전은 가치가 없지만 헤아릴 수 없는 대가를 요구한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언급하진 않았으나 외국인을 혐오하는 확증편향을 비판한 셈이다. 개방과 관용으로 성장한 미국에서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에 의한 평화(Pax Americana)’를 누렸던 사람이라면 로마가 무너진 뒤 생겼던 혼란을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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