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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책임, 그리고 남은 싸움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있으니, 내가 마무리해야지.” “아버지 원하는 대로 해.”
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한 건 몇 년 전 봄이었다. 아버지의 폐암 말기 진단은 가족 모두를 무너뜨렸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불러 ‘김씨 아주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김씨는 아버지와 12년 동안 동거하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김씨와의 관계를 정리하며 9000만 원을 계좌로 보냈다. 함께한 세월에 대한 책임이자 이별의 마지막 인사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이 돈은 법적·세무적 분쟁의 도화선이 됐다.
소송과 가압류의 소용돌이
아버지가 떠난 후 유산 정리를 시작한 가족은 김씨로부터 소송 통지를 받았다. 그는 사실혼 관계를 이유로 위자료와 재산 분할을 요구하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었다. 아버지의 빌라에는 이미 가압류가 걸려 있었다. 조사해 보니 김씨는 아버지 생전에 법률대리인을 통해 가압류를 신청했던 것이다.
법원은 조정을 통해 가족 측이 김씨에게 2억2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고, 가족은 이를 받아들이며 갈등을 끝냈다고 믿었다.
국세청의 증여세 칼날
소송이 정리된 줄 알았던 가족에게 국세청 고지서가 날아왔다. 국세청은 아버지가 김 씨에게 보낸 9000만 원을 증여로 보고 증여세와 상속세를 더 내라고 했다. 가족은 즉시 과세전적부심사를 청구하며 맞섰다.
가족 측에선 9000만 원은 사실혼 해소에 따른 재산분할금, 즉 아버지의 채무 변제 성격이니 증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씨의 소송, 가압류 신청, 그리고 아버지 생전의 지급 정황을 증거로 제출했고 국세청은 결국 증여세 부과를 철회했다.
하지만 상속세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가족은 김씨에게 지급한 2억2000만 원을 상속재산에서 공제해 달라고 했지만 국세청은 이를 ‘상속 이후 발생한 채무’라며 공제를 거부했다. 아버지의 생전 결정에서 나온 채무인데도 세금을 더 내라니, 가족은 억울했다.
조세심판원의 판결
가족은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냈다. 쟁점은 김씨에게 지급한 2억2000만 원이 아버지의 생전 채무로 인정될 수 있는지였다. 가족은 세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김씨는 아버지 생전에 사실혼 해소에 합의하고, 아버지를 채무자로 빌라 가압류를 신청했다.
△아버지는 생전에 9000만 원을 지급하며 관계를 정리하려 했고, 소송은 상속인인 가족이 이어받았다.
△따라서 2억2000만 원은 아버지의 생전 채무로, 상속재산에서 공제 대상이다.
조세심판원은 가족의 편을 들어 주었다. 아버지가 생전에 사실혼 관계를 해소하며 발생한 재산분할청구권을 아버지의 채무로 인정했고, 2억2000만 원은 상속재산에서 공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국세청의 상속세 부과는 취소됐다.
법적 분석: 상속세와 사실혼 채무
상속세는 상속재산에서 피상속인의 채무를 뺀 후 과세표준을 계산한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4조). 공제 대상 채무는 다음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사망 전 발생: 채무가 피상속인 사망 전에 생겼어야 한다.
△입증 가능: 계약서, 소송 기록, 가압류 등으로 채무가 명확해야 한다.
△실제 변제: 상속인이 채무를 실제로 갚았어야 한다.
이 사례에서 김씨의 재산분할청구권은 사실혼 해소로 생긴 채무다. 민법의 재산분할 규정을 준용해 사실혼에서도 동거 기간, 경제적 기여 등을 고려해 재산분할이 인정된다.
조세심판원은 가압류와 생전 지급된 9000만 원을 근거로 2억2000만 원을 생전 채무로 봤다. 국세청이 9000만 원을 증여로 판단한 건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조(증여 정의)에 따른 것이다.
증여는 ‘무상으로 재산을 이전하거나 가치를 증가시키는 행위’로 채무 변제의 성격이 불분명하면 증여로 추정된다. 가족은 과세전적부심사로 이를 뒤집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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