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가는 신약 개발의 원천이다.” 제약업계에서 자주 하는 말이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통상 10년 이상의 시간과 수천억 원의 개발비가 들어간다. 임상 시험의 실패 가능성도 높고 약물 개발 과정에 투입되는 인적 자원과 리스크 역시 상당하기에 신약이 비쌀 수밖에 없다.
이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기업은 당연히 투자한 만큼 이익을 남겨야 하고 그 마진으로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다. 따라서 약가 인하 제도의 구조적 문제는 필히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중복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현행 제도의 약가 인하 구조가 제약사의 경영 계획, 특히 연구 개발 투자 전략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수의약품의 약가는 정기적인 실거래가 조사나 재평가를 통해 자동적으로 인하되며 원료비나 인건비 등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해도 약가 인상을 받기 위해서는 공급 부족 우려 등 매우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원가 상승을 약가에 반영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또한 이미 약가가 결정된 이후에도 사용량 급증 유사약 등재, 실거래가 하락 등의 사유로 �煞� 인하가 반복되면서 하나의 약제에 여러 차례 인하 요인이 중첩 적용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제약사는 약가의 변동성을 감당하기 어렵고 안정적인 투자 계획을 세우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처럼 중복적인 정책은 개선이 필요하며 무분별한 약가 인하는 오히려 신약 개발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약가 인상이 답인데 문제는 이 모든 구조적 부담이 결국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특히 고가 신약이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받지 못할 경우 환자는 치료 기회를 얻기도 전에 자신의 경제력을 먼저 따져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일부 면역항암제는 1년 치료비가 1억 원이 넘는다. 비급여로 분류된 약을 사용할 경우 환자와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치료를 포기하거나 무리한 대출에 의존하거나, 결국 생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부는 이 구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제약사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인정하되 국민 건강권을 뒷전으로 미뤄서는 안 된다.
우선 가치에 기반한 약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약이 생명 연장, 삶의 질 개선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평가 기준으로 삼고 그 가치에 맞게 약가를 정하는 것이다.
특히 공공이 투자한 연구개발(R&D) 비용에 대한 환수 장치도 필요하다. 정부 예산으로 개발된 기술이 고가 약으로 둔갑해 다시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는 일은 이제 막아야 한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 만큼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마땅하다.
약가는 단순한 ‘가격’이 아니다. 국민 건강과 제약산업 육성이라는 두 목표 사이의 균형점이다. 제약사의 투자도 보호받아야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삶도 반드시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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