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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104] 돌이킬 수 없는
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15 06:22:05
 
 
 
상대는 횡포를 넘어, 목숨을 담보로, 질서 정연한 왕국을 흔들고 있다. 오정일은 침착하게 말했다.
 
협상이란 것은, 동등한 상태에서 하는 것이오. 이것은 협상이 아니라 협박이지요. 그래요, 협상이라 합시다. 당신을 무기를 들고 있고 나는 맨몸인데 비대칭 협상에서 저는 무얼 얻게 되지요? 더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그거 내려놓고 사무실로 올라오세요. 당신의 요구가 합당하면 제가 들어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들어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나를 협박하는 게 아니고 여기 정일어패럴 직원 전부를 협박하고 있는 거예요
 
오정일은 단호했고, 더는 할 말이 없다는 태도였다. 오정일은 김씨 얼굴 대신 노조위원장 얼굴을 바라봤다. 무슨 지시를 내릴지 궁금했다. 노조위원장과 오정일의 눈이 마주쳤다. 노조위원장은 오정일의 눈을 피해 김씨에게 마지막 신호를 보냈다. 고개를 미세하게 살짝 좌우로 흔들었다. 그게 그러지 말고 포기하란 신호인지, 저 인간 협상이 안 되니 실행하라는 시인지 알 수 없었다. 돌아서는 오정일의 등에 대고 김씨는 마지막 발악을 했다.
 
, 씨발, 너 내 말이 말 같지 않어? 나 죽으면 내 새끼덜도 다 굶어 죽어야, 니가 인간이면, 너도 새끼가 있으면 이렇게 매정하진 않을 거 아녀! 그까짓 월급 20만 원 줌서, 뼈 빠지게 야근까지 해서 30만 원 가져가는데 우리 식구 목숨이 그것보다 모다냐? 씨발 거 내, 니 앞에서 죽는 꼴 보여 줘야겠으야, 나가 죽으면 우리 식구꺼정 네 명이 죽는 거여, 너는 네 명 죽인 살인자랑게.”
 
오정일은 예감이 안 좋아 뒤를 돌아봤다. 김씨가 옆에 있던 휘발유 통을 들어 자기 몸에 끼얹으려 했다. 오정일은 순간적으로 그에게 뛰어들어 휘발유 통을 든 그의 손을 저지했다. 휘발유 통을 안 뺏기려 실랑이 벌이는 와중에 휘발유가 출렁이다 오정일 옷으로 튀었다. 막으려 하면 더 하고 싶은 심리였을까. 김씨는 있는 힘껏 오정일을 밀어내려 했다. 급한 마음에 오정일이 김씨를 껴안으며 알았으니 그만둡시다, 하는데도 김씨는 라이터에 불을 당겼다. 불이 붙은 라이터를 보자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물러섰다.
 
오정일은 안간힘을 다해 라이터 잡은 손을 붙잡았다. 라이터는 허공에서 맴돌았고 이내 김씨 손에 떨어졌다. 김씨는 다시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오정일을 향해 가까이 오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라이터 불을 오정일에 가까이 대는 순간 라이터 불이 오정일 몸에 닿았다. 순식간이었다. 화마가 오정일을 감쌌다. 불길은 가슴에서 배로 배에서 다리로 번졌다. 안 돼, 사장님! 여직원들이 비명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렸다. 노조위원장이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는 채 놀라고 있었다.
 
윤 부장이 허둥거리며 소화기를 잡고 오정일 몸에 분사했다. 김씨는 기름 범벅인 자기 몸에 불이라도 붙을까 봐 놀라서 저만치 도망가고 있었다. 오정일은 숨을 쉴 수 없었다. 두어 바퀴 돌아 바닥에 쓰러지는데 누군가 소화기로 불을 끄는지 뜨거웠던 몸이 식는 것 같았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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