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정식 신분증… 부적부 번호 27444
1년간의 교육을 마치고 우리는 정식으로 부적부(部籍附) 번호가 새겨진 신분증을 지급받았다. 부적부 번호란 국정원 직원 개개인의 고유번호이다. 나는 27444란 부적부 번호를 부여받았다. 번호의 시작이 1번부터인지 10001번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보다 앞서 국정원을 거쳐 간 선배들이 적어도 만 명 이상은 된다는 의미였다.
신분증에는 상반신 사진이 부착되어 있고 각자 고유의 전자 칩이 내장되어 있다. 국정원 직원의 신분증은 단순히 직원의 신분을 표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전자출입증 구실을 한다. 청사를 출입할 때 신분증이 열쇠 구실을 한다. 청사 내에서는 직원들의 동선이 완벽하게 모니터링된다는 뜻이다. 누가 지각을 했는지, 누가 야근을 했는지 자동으로 입력된다.
따라서 외부인이 신분증을 입수하게 되면 무단으로 국정원 청사에 접근할 수 있다. 외부인이 신분증을 도용하여 직원을 사칭하는 범죄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런 이유로 신분증 분실은 주요 처벌 대상이다. 국정원 직원의 징계는 거의 8~9할이 신분증 분실로 인한 것이다.
징계의 최하가 부서장 경고감이다. 경고라도 받게 되면 제때 진급하는 데 상당한 애로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국정원 직원들은 자신의 신분증 관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아주 철저하다. 대부분의 직원은 신분증을 아예 와이셔츠 윗주머니 속에 핀으로 고정시키고 다닌다. 그래서 국정원 직원을 가장 쉽게 감별하는 방법은 와이셔츠의 윗주머니를 보면 된다. 주머니 속에 딱딱한 신분증을 숨기고 있으면 국정원 직원이 틀림없다.
이렇게 중요한 신분증이다 보니 이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국정원 직원들은 소위 ‘신분증을 까는’ 일을 극도로 창피하게 여긴다. 그래서 평소 신분증을 까지 않고 상황을 수습하는 능력을 길러 두어야 한다.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옛날 거리에 차가 별로 없던 시절에는 신호위반에 걸리더라도 “야 비켜! 바빠!” 정도로 가볍게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이야 사정이 어디 그런가. 시절이 변해 이제는 거리의 의경이 가장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괜히 부딪혔다간 창피만 당하기 십상이다.
옛날에는 “포(包)가 포(包)를 잡아먹는 법이 어디 있는감?” 정도로 얘기하면 피차간 적당히 요해(了解)가 되었던 모양인데 요즘에는 “같은 정부미 먹는 사람끼리…”라고 구차한 동질감을 호소해도 잘 먹히지 않을 때가 많다. 최악의 경우에는 “야! 지금 미감(미행 감시) 중이야!”라고 업무 내용을 고백하고서야 겨우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나도 언젠가 애마(愛馬) 로열살롱을 몰고 시내를 운전하다가 까칠한 의경에게 걸린 적이 있다. 부득이 신분증을 까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젊은 의경은 내 신분증을 이리저리 한참 살펴보더니 “신호를 더 잘 지켜야 하실 분이…”라고 뼈 있는 한마디로 창피를 줬다.

요즘 국정원은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직장
이상으로 정규과정 1년간의 교육에 대해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회상해 보았다. 나의 경험이 국정원에 입사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젊은 후배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 기회를 빌려 국정원에 지원하려는 젊은이들에게 평소에 개인적으로 당부하고 싶었던 말을 몇 마디 전하고자 한다.
요즘은 국정원이 꽤 인기 있는 직장이라고 한다. 입사 경쟁도 아주 치열하다고 한다. 도청 문제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지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직장으로서 국정원의 인기는 여전한 모양이다. 아마도 국정원의 근무 여건이나 급여 수준 등이 어느 정도 공개되어 더욱 그런 경향을 부추기고 있지 않나 싶다.
사실 국정원의 봉급은 다른 모든 사항들과 마찬가지로 기밀로 취급되어 오랫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요즘은 국정원의 물색관들이 우수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근무 여건이나 급여 수준 등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어느 정도 공개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입사하는 후배들을 보면 하나같이 잘 생기고 실력도 대단해 보인다. 다들 우수한 성적에다 영어는 기본이고 여타 외국어에도 능통하다고 한다. 국정원이 선진 정보기관으로 발전하기 위해 실력 있는 인재가 몰리는 것은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희망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국정원의 미래는 밝다고 하겠다.
국정원 요원에게 필수는 ‘애국심’
나는 국정원에 지원하려는 젊은이들에게 국정원에 지원하기 전에 먼저 ‘조국에 자신의 인생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런 얘기를 하면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중요한 말이다. 진심이다.
국정원 요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학점도 영어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애국심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명감‧소명 의식이다. 조국을 절실히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국정원은 보람 있는 직장이 되기는커녕 평생 지옥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조국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살 자신이 있는 사람만이 국정원 요원이 될 자격이 있다.
국정원은 쉬운 직장이 아니다. 그저 “대우가 좀 괜찮다더라” 또는 “공무원이 안정적이라더라” 해서 입사했다간 후회하기 십상이다. 국정원의 급여가 일반 공무원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크게 많은 것은 아니다. 국정원도 엄연히 정부 기관의 하나이기 때문에 공무원 봉급 규정에 따라 급여를 받는다. 공무원 봉급이 절대로 풍족한 수준일 리가 없다.
돈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사기업을 알아보는 것이 낫다. 간혹 돈에 현혹되어 정보기관의 알량한 권력으로 허튼짓하는 직원이 있는데 경험상 그런 직원들은 틀림없이 사고를 친다. 사고를 치면 자기 혼자만 망하는 게 아니라 전체 직원을 욕보이게 된다.
격무‧스트레스에 때로는 목숨 걸 각오까지
국정원은 정시 출근에 정시 퇴근이 보장되는 그런 직장이 아니다. 동사무소 공무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곳이다. 어떤 분야에서 일하건 국정원 직원은 상시적으로 긴장해야 한다. 업무의 성격에 따라서는 신체적 위해(危害)를 걱정해야 할 때도 있다. 때로는 목숨을 걸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1996년의 최덕근 영사 사건처럼,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분이다. 신문에 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남미의 가이아나에서는 파견관의 아내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이아나는 남미에 있는 조그만 나라인데, 북한 요원들이 국적 세탁을 위해 경유하는 곳이다. 미국에 침투하는 북한 요원들은 대개 가이아나에 잠시 체류하며 국적을 세탁하고 캐나다로 가서 국적을 다시 한번 세탁한 다음 종국적으로 미국에 침투한다. 그래서 가이아나에는 북한 요원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우리 동기들의 예만 보아도 북측에 의해 체포 직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친구도 있고, 연변에서 공작하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한 달 이상이나 중국의 지하 감방에 수감되었던 친구도 있었다.
신포 경수로 현장에서 한국전력 직원으로 위장하고 오랫동안 북측의 위협 속에서 활동한 친구도 있었다. 마약사범을 검거하러 나갔다가 조폭이 반항하는 바람에 자동차에 치여 다리를 크게 다친 친구도 있었다.
지난번 아프가니스탄에서 샘물교회 선교사들이 피랍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 측 협상 대표로 활약했던 소위 ‘선글라스 맨’도 우리 동기이다. 이 모든 일들은 다 목숨을 건 위험한 활동들이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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