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국가들을 돌이켜 볼 때, 한 국가의 멸망은 내부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았다. 그 원인은 주로 국민의 안일한 안보 의식과 사회 지도층에 만연한 부정부패, 군 내부의 기강 해이와 군인 정신의 변질 등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방국과의 굳건한 동맹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장병의 확고한 애국심과 정신 무장이 중요하다.
21세기 군사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군사 선진국들은 새로운 무기체계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쟁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 군사혁신에 집중해왔다. 반면 약소국과 국제 테러집단, 반군 세력, 무장 종교단체 등 초국가·비국가 단체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비대칭적인 다른 형태의 전쟁을 추구하고 있다.
토마스 햄즈(Thomas X. Hammes)는 저서 ‘21세기 전쟁: 비대칭의 제4세대 전쟁’(2004)에서 4세대 전쟁(4th Generation Warfare) 개념을 구체화했다. 그는 4세대 전쟁을 “비국가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치·경제·사회·기술 등 모든 네트워크를 활용해 비정규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는 전쟁 형태”로 정의했다.
4세대 전쟁에 대한 논의와 분석은 전례를 중심으로 장기적으로 적용돼 온 약자가 강자를 이긴 역사적인 반란전에 근거하고 있다. 4세대 전쟁은 우세한 정치적 의지를 적절히 구사함으로써 경제적·군사적인 면에서 훨씬 더 강한 상대를 격퇴할 수 있다는 기본 전제에 뿌리를 둔다.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국가 또는 비국가 행위자들이 사회적 네트워크를 이용한 적군 격퇴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정치적 의지를 파괴하기 위해 적국 의사 결정자들의 심리를 직접 겨냥해 공격한다.
4세대 전쟁의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목적이 이념적인 갈등 구조 속에서 상대의 정치적 의지 변화, 혹은 약화 및 와해다. 이는 투쟁의 정치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직접적으로 적 의사 결정자들의 인식과 심리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때 다양한 전쟁 수단이 동원되며 여기에는 물리적·비물리적 방법 및 가용 무기뿐만 아니라 범세계적 네트워크, 통신 수단, 사이버 무기 등이 포함된다.
아울러 4세대 전쟁은 전장의 범위와 시기의 구분이 모호하고 전략적 중심 파악이 곤란해 전쟁이 장기적으로 전개되곤 한다. 이와 같이 4세대 전쟁은 장기적·전략적 접근에 초점을 두고, 전투보다 승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 개념은 프랭크 G. 호프만(Frank G. Hoffman)이 그의 저서 ‘21세기 분쟁: 하이브리드 전쟁의 등장’(2007)에서 제시했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분쟁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는 것으로, 미래의 전쟁은 정규전, 비정규전, 테러, 범죄적 무질서 등의 다양하고 상이한 형태의 전쟁방식이 동일한 전투공간에서 발생한다”는 개념이다.
하이브리드전 수행 방식은 정규전, 비정규전, 사이버전,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활용하는 모든 전투 방식이 포함될 것이다. 전쟁 같지 않은 전쟁을 수행하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영역의 수단을 동시간대에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전쟁 양상의 이분법적 구분은 무의미하고, 여러 가지 형태의 전쟁 양상이 혼재된 상태로 전개된다. 전쟁의 영역이 군사적인 분야를 뛰어 넘어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역량을 통합하고 조정해 동시에 적용하는 수준으로 확대된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국가적 취약점을 공략하고 예측 불허의 비대칭 접근을 구사하며 모든 전투요소를 동일한 공간에서 활용한다. 북한의 상시적 대남 무력 도발과 비정규전 수행 능력, 핵무기 사용 가능성 등은 북한의 하이브리드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는 북한의 하이브리드전 수단의 선택을 다양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자행해 온 각종 테러 및 국지 도발은 하이브리드전 전략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군대의 변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떤 기술들이 있으며, 시대적 특징이 무엇이고, 이런 기술과 특징이 군사혁신에 어떤 영향을 초래하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초연결·초지능·초융합’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모든 혁신적 기술은 인간과 가치에 귀결되므로 인간은 더욱 존중돼야 하고 올바른 가치 판단이 중요하게 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로 하는 인재상은 단순 지식인이 아니라 새롭고 급변하는 상황에서 적응을 잘하고 소통, 창의성, 분석력, 협업능력 등을 갖춘 인재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분명 첨단 무기로 무장한 군대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과거 베트남(월남) 전쟁 경험 등에 비춰 볼 때 전쟁 승리를 위해 첨단 무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신전력이다. 특히, 장차 한반도에서 4세대 전쟁, 하이브리드 전쟁 등이 중요한 전쟁 양상으로 예상되는 현 시점에서 대응책으로 정신전력을 강화하고 포괄적 상황 판단 및 결심 능력을 구비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더더욱 필요하다.
한국군의 무형전력의 핵심을 이루는 정신전력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매우 부진하다. 신세대 장병의 특성, 다문화 장병 증가와 여성 인력 확대 등은 정신전력 교육 내용과 방법의 많은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념적인 교육과 군대 윤리, 도덕성 함양 교육을 포함한 정신전력 교육 교과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더욱이 정권 교체 때마다 정신 교육 내용과 방향이 바뀌고 전쟁의 개념과 양상이 변화하고 있어 정신전력 교육 개선의 필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장병 정신전력 교육을 위해 헌법 중심의 정신전력 교육 체계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일 연방군은 헌법 교육을 정신전력 교육의 분야로 강화해 개인과 군대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내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군복 입은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헌법적 국가 가치를 신념화하도록 한다. 우리 군도 장병의 국가관·안보관 확립과 군인정신 함양을 목표로 실시되는 정신전력 교육을 ‘장병 민주시민 교육 체계’로 전환하고 국군의 핵심 가치를 ‘자유민주 수호군’으로 설정해, 새로운 전쟁 양상과 시대 상황을 담아내는 정신전력으로 발전시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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