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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의 개인주의 시선
개인주의 관점으로 본 역사교육 문제
‘선과 악’ 세계관 위에 레토릭에 함몰된 한국 사회
레토릭에 묶인 역사관, 논쟁 대신 낙인·재판 횡행
배민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0-14 09:25:13
 
▲ 배민 숭의여고 역사교사·치과의사
최근에 역사교육계의 가장 첨예한 이슈는 2022 개정 교육과정 관련 교과서 문제다. 가령 6·25 전쟁에서 남침이라는 표현의 삽입 여부,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표시할 것인가의 여부 등이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전체적인 구도를 보면, 전국역사교사모임(전역모)으로 대표되는 현재 주류 역사교사들의 시각은 수성의 입장이라면, 우파적 시각을 가진 학부모 및 관련 단체들은 주류 역사관에 도전하는 입장에 가깝다. 
 
물론 이에 대해 전역모 교사들은 부정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권위주의적인 국가 권력과 자본가 세력의 지배에 대항하여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 분투하는 입장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프레임이 바로 이러한 시각, 즉 자신들이 기득권 보수세력에 맞서 역사의 진보를 위해 애쓰고 있는 집단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한국 역사교육계의 주류 역사교사들이 가진 시각은 그들만의 주관적인 신념일 뿐이다. 과연 누가 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적 위치를 주장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는가? 없다. 그냥 그들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자신들을 좌파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할 것이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진보라고 불리길 바란다.
 
차라리 더 솔직하게 자신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으면 좋겠다. 그들의 바람이 더 솔직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말이다. 실제로 그들은 ‘아름다운’ ‘정의로운’ 같은 형용사를 즐겨 사용한다. 이는 우파에도 적용된다. ‘올바른’ ‘애국하는’ 등의 자아 규정은 최근 들어 우파 단체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표현들이다.
 
이런 것을 보면 한국 사회는 레토릭에 함몰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프레임과 표현들이 레토릭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데 있다. 논쟁적인 이슈를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논쟁하기보다는 선과 악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레토릭으로 상대를 재판하는 데에 열을 올릴 뿐이다. 
 
한국에서 역사 그리고 역사교육은 그러한 일탈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분야다. 이는 국정 교과서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관 자체가 레토릭으로 묶여 전혀 자유로운 논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는 국정 교과서 체제는 아니지만 국정 교과서 체제나 다름 없다. 교과서 시장에서 팔리는 모든 출판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교육부 지침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동일한 시각을 담고 있으며 디자인과 문장 표현만 다를 뿐이다. 사실상 주류 역사관이 교육부를 통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시장의 독점 뒤에는 오스트리아 경제학파가 주장하듯 늘 정부가 있다는 것을 한국사 교과서 시장만큼 잘 보여주는 곳도 없다.
 
여기에는 사법부의 공로도 크다. 개별 역사적 사안에 대해 사법부가 지나치게 학문의 장 혹은 공론의 장에 침범하여 진실과 오류를 규정하는 역할을 해 온 것이다. 한국의 사법부는 대중의 집단 감성의 수준을 결코 넘어서지 못했다. 대중의 집단 감성에 휘두리는 것은 행정부로 족하다. 가령 행정부는 ‘역사를 바로세우겠다’며 떵떵거리고 나설 수 있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그런 사회분위기에 거리를 두고 역사 재판을 하지 않도록 자중해야 했다. 행정부는 존재 이유가 사회 대중 속에서 다수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 있으므로 다수의 이름으로 사실상 독재를 하게 된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원인은 위에서 언급했듯 논쟁이 허용이 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있다. 이미 좌파와 우파는 서로 반대편의 레토릭이 레토릭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자신들만 모르고 있다. 가령 우파는 좌파가 약자들 편에 선 사람들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좌파가 자신들을 포장하는 레토릭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단지 좌파만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 
 
좌파는 자신들이 진정으로 약자들을 위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좌파는 우파가 애국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저 우파의 레토릭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단지 우파만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진정으로 애국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좌파가 약자들 편에 서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우파가 애국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약자들 편에 서는 것은 좌파만이 아니고 생각 있는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애국심도 생각 있는 한국인이라면 다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들만이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로 자아 규정을 하고, 상대는 약자를 생각하지 않고 애국심도 없는 집단인 양 몰아 부치며 레토릭을 독점하려 한다.
 
한국의 소위 역사 혹은 역사 교과서 논쟁에는 사실상 논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무수한 낙인과 역사 재판만이 횡행한다. 빨갱이라는 낙인으로 과거 좌파가 고생을 했다면, 이제는 친일·독재 미화 등의 낙인으로 우파 역시 입을 열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이런 것은 수성을 위해 상대를 찍어 누르는 행태와 다름없다.
 
개인적 관점으로 보면, 논쟁적인 부분은 논쟁적인 사안이라는 것이 인정되도록 하고, 다양한 시각이 낙인찍힐 위험 없이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출판사 한 곳에, 교과서 표현 하나에 좌표 찍어서 우루루 몰려서 공격하는 원시적인 집단행동도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다.
 
교과서에 담는 내용은 과거 정권의 ‘공과를 공정하게 담겠다는’ 만용을 부리기보다 최소한의 국민 교육 교재로서의 사실 전달 및 국가적 가치관 교육이 수준에서 만족해야 한다. 어차피 역사는 표현 하나하나가 다 정치적이라 공정하게’ 서술하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최고라는 국뽕 사관이 아닌, 세금 내는 국민으로서 가지는 권리와 의무에 합당한 수준의 국가의식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좋겠다. 거창하게 민족사적 역사관과 같은 집단주의적 관념을 담으려 하면 할수록 과거를 미화하거나 불필요한 레토릭에 함몰되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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