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6·15 남북공동선언’의 제1항에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자”고 한 것은 북한에 ‘우리민족끼리론’이 등장하는 배경을 제공했다. 우리민족끼리는 2001년부터 ‘동족공조’에 이어 ‘민족공조’ ‘조선민족끼리’와 같은 용어와 동시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동족공조는 2001년 1월 평양에서 개최된 ‘우리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 대회’에서 채택된 ‘7천만 겨레에게 보내는 호소문’과 이에 대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통해 조선민족끼리·민족공조·우리민족끼리와 혼용된 개념으로 사용됐다.
북한에서는 2002년부터 우리민족끼리, 민족공조의 두 용어 사용의 일반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2003년 신년공동사설에서 북한은 그 동안의 우리민족끼리, 민족공조의 개념을 하나의 이념이라고 표현했다. 6·15 남북공동선언에 근거해 김정일의 민족대단결론에 토대한 우리민족끼리론 혹은 민족공조론은 새로운 김정일의 통일론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사회주의권의 급격한 변화는 북한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밖에서는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에서 개혁(Perestroika)·개방(Glasnost)의 바람이 불어오고 안에서는 자립경제가 흔들리는 체제위기 국면을 맞게 됨으로써 체제수호를 위한 대책마련의 필요성이 시급히 대두됐다.
이에 따라 종래의 주체사상만으로는 주민들을 설득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간파하고 새로운 통치 담론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우리민족제일주의’도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우리식 사회주의’와 함께 등장했다. 외부에서 오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제시된 이들 담론은 주민의 사상 동요를 막고 체제를 지키는 논리를 동원해 이론체계를 세우는 것이었다.
‘조선민족제일주의(우리민족제일주의)’는 북한이 우리식 사회주의를 더욱 정교화해 소련, 동부 유럽 사회주의권과는 전혀 다른 민족임을 내세워 그들 나라에서 불어오는 변화의 외풍을 차단·단절하고자 하는 체제 수호 차원에서 출발했다. 1985년 무렵부터 민족주의를 새롭게 정의하고 해설하는 논문이 대거 출판됐으며 1986년 7월 김정일이 당중앙위원회 책임간부들과 담화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에서 우리민족제일주의가 공식 등장했다. 1989년 9월에는 ‘우리민족제일주의론’이라는 단행본이 발행되기에 이르렀다.
북한에서 말하는 조선민족제일주의란 “조선민족의 위대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조선민족의 위대성을 더욱 빛내어 나가려는 높은 자각과 의지로 발현되는 숭고한 사상 감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조선민족의 위대성’의 근거로는 ‘수령을 모신 긍지와 자부심’ ‘당의 영도’ ‘주체사상’ ‘우리식 사회주의’를 들고 있다.
조선민족제일주의의 등장은 “조선민족제일주의 정신을 높이 발양시켜 나가야만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 책동이 강화되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혁명적 지조를 굳게 지켜나갈 수 있다”는 시대적 절박함에서 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민족제일주의는 1980년대 말부터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진행되자 동부 유럽 사회주의국가들과 차별화를 통해 북한 사회주의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사회통합을 꾀하기 위한 필요에 따라 등장한 통치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민족제일주의 담론의 확산은 북한사회에 민족주의 정서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으나 조선민족제일주의에서 말하는 ‘조선민족’이란 한민족 전체가 아닌 수령·주체사상·우리식 사회주의에 기초한 ‘북한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우리민족제일주의는 민족의 우수성에 바탕한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돋우고, 조국통일의 실현으로 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빛내려는 자주적 입장과 투쟁의지를 높이 발양시켜 전 민족을 민족공조의 길에 떨쳐나서도록 추동하는 사상·정신적 기초로 기능하고 있다. 우리민족제일주의는 민족공조의 이론적 기초이다.
민족공조의 개념은 ‘우리민족끼리 공조를 실현해 통일의 지름길로 나가기 위해 민족공동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고 모든 것을 여기에 복종시키며, 민족자주·애국애족의 이념에 기초해 민족대단결을 실현해 나가자는 것’으로 규정했다.
민족공조의 원칙은 ‘민족자주의 원칙’ ‘민족공통의 이익의 원칙’ ‘공존·공영·공리 도모의 원칙’ 등 이전의 민족대단결 개념을 변형시킨 것이다. 나아가 북한은 2005년 신년공동사설에서 민족공조를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의 3대 공조로 구체화시켰다.
따라서 민족공조란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투쟁에서 민족구성원 모두가 마음과 뜻, 힘과 지혜를 하나로 합치고 서로 협력하고 지지하고 행동상 보조를 일으켜 나간다는 것이다. 또 민족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그 어떤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와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같은 민족 끼리 서로 도우면서 뜻과 지혜, 힘을 합치고 지지하며 행동을 함께 해 나가는 민족적 단결과 투쟁의 원칙이며 방법이다.
민족공조는 통일문제에 대한 외세의 간섭을 철저히 배격하고 모든 문제를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민족의 의사와 이익에 맞게 풀어나가며 그것을 방해하는 외세와 반통일 세력에 대항하거나 반대하는 투쟁에서 서로 지지하고 보조를 같이 하면서 공동행동을 적극 추진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제를 비롯한 외세와 공조를 배격하고 사상과 제도,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초월해 남과 북, 해외의 모든 민족이 단결하고 공동보조를 취해 민족 자체의 힘으로 조국통일 위업을 성취할 것을 주장한다.
민족공조론은 남한 사회가 미국 제국주의 강점과 예속 하에 들어가 있다는 기본인식을 갖고 있다. 김정일의 대남관은 그의 민족자주이념에 터 잡고 있으며, 한 마디로 민족 운명의 주인이 민족자신이라는 정신과 사상이다.
민족자주이념은 민족공조론의 개념상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 민족자주권의 확보와 조국통일의 실현을 하자는 것과 같은 논리성을 갖고 있다. 민족자주이념에서 ‘조선민족이 미국민족과 민족적으로 대립’하고 있다는 논리적 구도는 민족공조론에서 핵 대결 구도를 ‘남과 북의 조선 대 미국’이라고 보는 구도와 같은 접근 논리다.
북한의 민족공조론이 안고 있는 가장 큰 한계는 김정은 대에 더욱 강조되고 있는 민족관에서 핵을 이루는 사상 곧 ‘우리민족’이 ‘한민족’이 아닌 바로 ‘태양민족’이자 ‘김일성민족’이라는 데 있다. 김일성의 생일을 태양절로 기념하듯 북한에서 태양은 곧 김일성이기 때문에 ‘태양민족=김일성민족’이란 등식이 성립된다. 우리 민족의 건국 시조는 단군이지만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는 김일성이라는 것에 근거하고 있으며 주체사상에 기초한 주체의 조국관 특히 모든 문제를 혁명적 수령관을 핵으로 한다는 데 근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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