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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살해·고문하는 등 인권침해를 저질렀다고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9일(현지시간) 판결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ECHR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하며 민간인·군인 살해, 고문, 강제노동, 불법적·자의적 구금 등으로 유럽인권협약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러시아 및 러시아 통제 하의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모든 사람을 지체 없이 석방하거나 안전하게 돌려보내라”고 명했다.
또 ECHR은 러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찾아낼 독립적·국제적 조직의 마련에 협조하고 이들이 가족과 연락·상봉하도록 할 것을 러시아에 요구했다. 러시아 측은 점령지역에서 발생한 전쟁고아를 보호한 것이라고 시종일관 주장해 왔다. 우크라이나가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과 자국 정부군의 이른바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주)내전 과정에서 러시아가 인권 범죄를 저질렀다며 2014년 3월 ECHR에 제소한 결과를 이날 받아낸 셈이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직후 이뤄진 우크라이나의 ECHR 제소는 막 본격화한 돈바스 사태를 명분으로 내걸었으나 이후 약 7년간 친러시아 주민들 쪽 희생이 훨씬 컸다. 이것을 멈추게 한 것은 2022년 2월24일 이들의 보호를 내걸고 러시아군이 진입하면서였다. 한편 ECHR은 2014년 7월 298명이 희생된 말레�決첸판陋� 보잉777 피격 또한 러시아 책임임을 공식 확인했다. 당시 국제조사단이 이미 여객기가 도네츠크에서 발사된 러시아산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됐다는 결론을 냈다. 친러 반군에게 우크라이나 수송기로 오인돼 벌어진 참사였다.
유럽평의회 산하인 ECHR이 2022년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를 유럽평의회에서 퇴출한 상태다. ECHR은 이들 소송이 그 이전에 제기됐다는 이유로 심리를 계속해 이날 판결을 선고한 것인데 그 실효성에 대해선 대부분 회의적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이날 판결에 대해 “효력 없다고 간주한다”며 “결정을 따를 생각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2016년 상설 전범재판 법원인 국제형사재판소(ICC)도 탈퇴한 터라 전쟁범죄 책임을 물을 수단이 없다. 이에 유럽평의회는 우크라이나 침공 책임을 단죄할 특별재판소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상의 내용이 주요 외신의 보도이며 그것을 받아쓰는 각국 매체들이 많다. 다만 이른바 ‘주요 외신’이란 서구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표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우크라이나전쟁 관련 보도는 거의 ‘러시아 악마화’로 귀결되기에 최소한 제3자들은 그 배경과 이면을 들여다 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우선 서유럽과 슬라브족 권의 매우 오랜 갈등, 서유럽의 슬라브 멸시의 역사를 들 수 있다. 몽골에 몇 백년 지배 당한 것도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러시아의 호전성이 자주 거론되지만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러시아가 늘 수세적이었다.
서유럽 여러 나라 언어에서 ‘노예’를 뜻하는 어휘와 슬라브족의 ‘슬라브’가 어원적으로 연결된 것만 봐도 어느 쪽이 어느 쪽을 먼저 노예화했는지 알 수 있다. 서방의 선제 공격인 19세기 나폴레옹전쟁과 20세기 독일(나치)·소련 전쟁 때 큰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것도 러시아였다. 광대한 영토가 처치 곤란인 나라를 영토 야욕으로 몰아가는 서구 측 설명에 동의하기 어렵다. 19세 중앙아시아 지배를 둘러싼 제정러시아와 영국의 대결도 ‘그레이트 게임’으로 불릴 만큼 엄청났으나 승자는 영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에야 이 지역이 대부분 당시 소련의 위성국 등으로 러시아권에 편입된다.
ECHR이나 ICC 등 유럽의 주요 법적 기구들이 돈바스 내전(2014년~2022) 참상을 외면한 것에 먼저 해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영토지만 러시아계 주민이 많다. 소련 시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혈연·문화적으로 깊이 얽힌 한몸’이었고 산업화 중심지인 돈바스란 일찍부터 러시아계 취업 이민자에 의해 발전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크림반도 역시 원래 러시아 것이었으나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에게 선사된 땅이었다.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에겐 대규모 아사 ‘홀로도모르’(1932~33)라는 트라우마가 있다. 세계적 곡창지로 자영농이 많은 우크라이나가 인민농장화로 노동 의지를 잃은 가운데 설상가상 상황을 악화시킨 게 이오시프 스탈린의 산업화 우선 정책이었다. 이것이우크라이나가 소련의 적인 나치 편이 된 결정적 이유다. 나치의 인종적 편견까지 더해진 것이 우크라이나 서부 갈라치아 지역의 자의식이다. 슬라브와 인연 없는 서구의 일부로 자처해 온 곳이다. 여기서 나치 협력자들이 다수 배출됐으며 1991년 소련 해체 및 우크라이나 독립 후 강성 민족주의 세력으로 등장했다.
유럽연합(EU) 가입을 통해 서구의 일부가 되려는 이들 갈라치아 중심의 우크라이나 열망이 러시아계 주민 핍박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곳이 돈바스였고 현지 민병대과 우크라이나 정부군과의 대결이 내전 수준으로 비화했다. 이것을 조정하고자 러시아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간 조정과 프랑스·독일 중재로 우크라이나와 두 차례 민스크협정(2014·2015)을 체결한 바 있으나, 이후 달라진 것은 서구 지원 아래 우크라이나 무장이 강화된 것뿐이라는 점을 들어 러시아는 이 협정을 기만 술책으로 간주한다.
러시아계 주민 안전 등 돈바스 문제 해결을 공약의 하나로 내걸고 2019년 당선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취임 후 강성 민족주의자들 협박 앞에 굴복했다. 전임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 임기 막판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노력이 헌법에 적시됐으며 친러 주민들 수난은 끊이지 않았다. 이 문제를 방치한다 해서 자국 내 여론 악화가 지속되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특별군사작전’을 내세웠고 그게 3년 이상의 전쟁으로 비화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을 반대하며 돈바스 내전에 주목한 서방 지도자는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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