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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실의 좌석 배치를 보면 회사의 경영 방향이나 스타일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필자가 과거 경험했던 대개의 사장 좌석은 길쭉한 직사각형 탁자의 중심 자리다. 이 방 ‘주인은 나’라는 명백한 증거라도 보이는 듯한 자리다. 소파라면 중앙의 1인용 자리다. 묵시적으로 압도하는 이런 ‘상설’ 사장석의 관행은 경직된 회사, 권위적 조직일수록 정도가 심하다.
특히 일부 공기업 사장실, 언론사 사장실, 대학 총장실 등은 대개 규모가 어마어마하여 상상을 초월한다. 방에 들어서면 그 큰 방에 주인공 자리가 저만치에 자리 잡고 있다. 필자가 경험했던 최악은 방문에 들어서서 10여 초쯤 걸어가서야 그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경우이다. 복종과 위압을 전제로 만들어 놓은 중국의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쯤이다.
우리는 과거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거치면서 방의 크기가 곧 권력의 크기를 의미하던 시대를 경험했다. 그런 과시와 위압적인 분위기 조성은 일정 부분 조직의 기강과 권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탈(脫)권위적 시대 흐름과 수평적 소통 문화의 현 시대에도 그런 과도한 권위의식의 공간화가 괜찮을까.
우리는 일상에서 회의실, 기념식장, 행사장, 종교 모임, 가족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의 자리에 앉게 된다. 이때 자리는 그때의 지위나 힘의 크기에 따라 주어지거나 의미를 가진다. 때로는 그런 의전 때문에 공무원들이 골머리를 앓기도 하고 난감한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어쩌다 참석한 모임에서 남몰래 불쾌한 감정을 안고 돌아온 기억도 있을 것이다.
회사는 사장이 주인이고 사장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그래서 사장실은 온전히 사장의 의중이 담긴 구조로 만들어진 자리라 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은 직원들이 보고하거나 사장 주재로 회의를 하기 위한 편의성에 방점을 둔 배치다. 이때 설령 과도한 방의 규모나 과시로 분위기를 압도한다 해도 리더십의 일부로 넘어가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외부 손님에게조차 그런 분위기를 강요한다면 곤란하다. 앞서 방문한 30평쯤 되는 큰 방의 압도적인 분위기를 진심으로 즐기는 손님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와, 방이 아주 크고 멋지네요. 회장님 존경합니다” 등의 찬사로 인사치레하는 손님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복잡한 심경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이 권위적이구나” “치켜세워 줘야 하나?” 등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권위의식의 과도한 공간화는 그 방의 주인이 완벽한 ‘갑‘일 때의 구조다. 권력자가 민원인을 면담하거나, 회장이 임원 회의를 한다거나, 부탁하러 오는 사람들을 접견할 때와 같은 제왕적 구조에 적합하다. 하지만 사람이 항상 갑의 구조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다. 가끔은 갑, 가끔은 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극 드라마에서 자기보다 높은 권력자가 방에 들어오면 자기 자리를 양보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사장들 중 일부도 그렇게 행동한다. 하지만 그렇게 내주는 자리라 해서 덥석 흔쾌히 앉을 손님은 별로 없다. 구조적으로 주인장 자리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하여 사장실 바로 옆에 별도로 접견실을 두거나, 원탁과 직사각형 탁자 두 개를 동시에 들여놓고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사장도 있다. 또 아예 사장실을 가정집처럼 꾸며 놓거나 예술 공간처럼 편안한 구조로 개조하여 누가 상석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한 경우도 있다. 나름 묘책이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자리는 사소한 욕망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직자나 정치 권력자들에겐 자리가 그들의 권위와 직결된다. 그래서 다들 사소한 것 같아 보이는 좌석 배치에 예민하고 쪼잔하게 반응한다. 지난해 당대표 한동훈과 윤석열 대통령의 면담 자리는 그래서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우리는 ‘자리를 내준다’는 표현을 흔히 쓴다. 자리 안내는 그를 초대한 호스트의 감정과 의도를 드러내는 무언의 메시지다. 정말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거나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그런 마음으로 배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공간을 이끌어 가야 한다. 많은 경우, 자리가 마음의 각도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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