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국민의힘 혁신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수도권 중심 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영남 중심 보수를 탈피해야 한다"는 구호가 유행처럼 반복되고 있다. 기성 언론들도 이런 프레임을 부추기고 있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과연 현실에 부합하는 주장일까. 오히려 지지층이 국민의힘에 모멸감을 느끼는 이유는 당당하지 못하고 기회주의적 보신주의로 좌파들의 내란 프레임에 편승하며 말 바꾸고 태세 전환하며 사죄 운운하는 행태 때문 아닐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 수도권은 이미 좌파 40·50 화이트칼라 유권자들이 정치·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상태다. 강고한 좌파 본진이다. 그 상황에서 ‘수도권 중심’을 운운하며 모호한 중도로 나아간다는 것은 허망한 전략일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호남 지역을 의도적으로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 이유가 있다. 좌파 내에서 호남 패권은 이미 사실상 상실됐다. 호남은 수도권 좌파 세력의 부속지처럼 되어 버렸다. 애초부터 이재명은 이낙연 계열 호남 출신 좌파 언론인들을 중용하지 않았다. 임종석·박용진 같은 호남 출신 정치인들도 과감히 공천에서 내쳤다.
반면, 보수 우파 진영에서 영남의 위상은 다르다. 영남은 여전히 우파의 본진이다. 문제는 현 대구·경북(TK) 정치가 지나치게 노년 중심, 관료주의적, 웰빙형 식물성 보수의 전형이 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영남발 청년 주도의 강력한 혁신이 없다면 보수 우파의 미래는 없다. 영남에서부터 보수가 근본적으로 혁신되어야 수도권 유권자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수도권 유권자는 좌파적 콘텐츠만 원하는 것이 아니다. 더 선명하고, 젊고, 효율적인 신보수 정치 세력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이른바 ‘영남발(發) 선명 보수’가 필요한 이유다. 이준석 전 대표가 영남 출신임을 내세우면서도 영남권에서 지지세를 확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좌파 미디어에 기생하며 정통 우파를 외려 모욕하고 자해하는 빈약한 역사관과 패륜적 정치 행보 때문이다.
지금은 불닭볶음면 같은 강렬한 정치가 통하는 시대다. 그런데 밍밍한 ‘맹물 죽’ 같은 큰절 정치, 사죄 정치에만 몰두하니 지지층이 모멸감을 느끼는 것이다. 대선 패배도 비상계엄 때문이 아니었다. 국민은 이재명 정권을 막기 위해 맞서 싸웠는데, 그 열정을 배반한 국민의힘의 기회주의와 이기주의가 패인이었다. 전화 면접 조사에서도 40% 넘는, ARS에서는 50% 넘는 탄핵 반대 지지율은 국민이 비상계엄에 대한 단죄보다는 이재명 정권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본다는 의미였다.
전 세계 흐름도 그 방향이다. 유럽에서도 선명 우파 정당들은 기존 우파 본진의 무기력함 속에서 스핀오프 형태로 등장해 판을 흔들었다. 영국의 개혁당이나 스페인의 복스(Vox)가 대표적이다. 오늘날 보수 우파 대중주의는 블루칼라·시골 제조업 지역 중심으로 청년과 결합해 성장 중이다.
좌파는 기성 노동 이념 중심 좌파와 글로벌리즘,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주의, 엘리트주의 좌파로 분열되고 있으며 이 틈을 타서 선명 우파 노선이 집토끼 선명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있다. 또 자국민 중심 경제, 복지, 반PC 어젠다로 블루칼라 표를 흡수하며 좌파 기반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보수 우파 재건을 논할 때 탄핵 반대 아스팔트 우파의 열풍이 수도권 중심으로 확산된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때 광장에 나온 이들은 ‘태극기 극우’가 아닌 스윙보터·자유시장경제 지지층·좌파에서 전향한 중도층이었다.
그런 민심에 답하려면 길은 하나다. 당당함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 박근혜, 윤석열까지 이어지는 우파 리더십의 공과(功過)를 실사구시적으로 평가하고 자긍심을 갖는 것이다.
수도권 우파 정치를 살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영남 보수부터 젊고 강한 정치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영남에서 선명한 신보수 혁신이 이루어져야 수도권 시장도 열린다. 지금처럼 ‘수도권 중심’ ‘중도 혁신’이라는 모호한 구호만 외친다면 공허한 선언에 그칠 뿐이다. 정면승부 없는 한 보수가 모멸감을 벗을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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