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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물 ‘水’가 들어갈 만큼 수국은 물을 좋아한다. 수국꽃 피는 시기가 초여름 장마철과 겹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 장마가 찾아오는 제주는 수국도 빠르다. 제주 산수국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야생화로 장마철인 6월에서 7월 사이에 다양한 색깔의 꽃을 피워올린다.
수국꽃의 색소는 델피니딘이다. 이 색소는 평소 붉은색으로 존재하다가 산성인 알루미늄 이온과 결합하면 푸른색 꽃을 피운다. 흰색 수국은 델피니딘 색소를 제거한 것으로 일종의 개량종이다. 이렇듯 최근에는 토양 첨가제를 이용하거나 화학적 방법을 통해 수국꽃의 색을 정하고 있다.
푸른색 수국 만발한 혼인지·종달리
서귀포시 동편 성산일출봉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혼인지는 푸른색 계통의 수국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혼인지라는 이름은 탐라 개국 신화에서 유래한다. 기록에 따르면 아득한 먼 옛날 고·양·부라는 이름을 가진 세 신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사냥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고 고기를 식량 삼아 살았다고 한다.
하루는 자줏빛 흙으로 봉해진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와 이를 열어보니 그 안에 돌함이 들어 있었다. 돌함을 열었더니 다시 그 안에서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가 나왔다.
공주들은 오곡 씨앗 한 소쿠리에다 송아지·망아지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 세 여인은 벽랑국의 공주들이었다. 세 신인은 나이에 따라 차례대로 세 공주를 아내로 맞아 지금의 혼인지 연못에서 목욕하고 혼례를 올렸다고 한다.
당시 벽랑국 공주를 태운 목함이 도착한 곳이 지금의 ‘황루알’이다. 황루알은 황금빛 노을을 뜻하는 말로 부근에는 공주들의 발자국이 찍힌 바위가 있다고 한다. 또 인근에는 공주들을 발견한 신인들이 쾌성을 질렀다는 ‘쾌성개’라는 장소도 있다.
혼인지는 고대인이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씨족을 형성하고 번성한 과정을 상징하고 있다.
푸른 수국꽃은 부케처럼 탐스럽고 초여름처럼 싱그럽다. 혼인지에는 전통혼례관, 폐백실, 세 공주 추원각 등 건축물이 있어 푸른 수국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장마철 나들이는 번거로울 수도 있지만 일면으로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어 좋은 면도 있다. 우산을 쓰고 빗방울 떨어지는 수국 꽃길을 산책하는 것은 제주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제주섬 북동쪽 제주시 구좌읍에는 종달리 수국길이 있다. 종달리는 공항에서 제주 동부를 향해 약 1시간 정도 차로 달리면 비자림 지나 지미봉 자락에 자리한 마을이다. 완만한 언덕을 따라 농사도 짓고 어업도 하는 전형적인 반농 반어촌이다.
이곳에는 종달리 외에도 자생적으로 생긴 안카름·물알 등의 마을이 있다. ‘안카름’은 안쪽 마을이라는 뜻이고 ‘물알’은 개천 아래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개금물(금물과원, 감귤 과수원) 아래 있다는 뜻도 된다. ‘종달’은 종처럼 생긴 산(지미봉) 밑에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종달리는 한자로 ‘통달을 종결했다’는 뜻으로 표기된다.
종달리는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수국꽃 피는 6월이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때아닌 활기가 흘러넘친다. 해안도로를 따라 탐스럽게 피어있는 수국을 보려면 드라이브·자전거·도보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
종달리 해안에는 우도행 배를 탈 수 있는 종달항이 있다. 조용한 여행을 원한다면 성산항 대신 종달항을 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탐스러운 붉은색 수국꽃 한림공원·송악산
제주시 서쪽 한림읍에 위치한 한림공원은 1971년 송봉규 선생이 10만여 평의 모래밭에 야자수 씨앗을 파종하여 푸른 낙원으로 변모시킨 곳이다.
아열대식물원, 야자수길, 산야초공원 등 다양한 테마의 정원마다 독특한 볼거리가 가득한 데다 365일 꽃을 볼 수 있어 제주를 대표하는 여행지로 손꼽힌다.
6월의 메인 꽃은 수국이다. 1000여 본의 수국·산수국이 한림공원 곳곳을 장식하는데 다양한 컬러의 수국 가운데서도 붉은 계열의 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붉은 수국 사이를 노니는 푸른 공작의 자태는 한 폭의 그림을 방불케 한다. 이곳에는 공작 외에도 앵무새, 꿩 등 다양한 새들과 만날 수 있다. 이런 아름다움으로 장쩌민 중국 전 국가주석과 나까소네 전 일본수상 등 세계적인 귀빈이 이곳을 다녀갔다.
제주 한림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면 서귀포시 대정읍의 송악산 수국길과 만날 수 있다. 제주도의 남서쪽 끝에 뽀족하게 튀어나와 있는 송악산은 분화구 두 개로 이뤄진 이중 화산체다.
송악산을 끼고 2.8㎞ 길이의 탐방로가 조성돼 있는데 출발점에서 1.6㎞ 정도 떨어진 전망대 부근에 대규모 수국 군락이 자리하고 있다.
송악산 정상에서 가파도를 향해 분화구 경사면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수국은 제주가 자랑하는 풍경으로 산방산·형제섬 등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수국은 6월이 한창이지만 고도가 있는 곳에서는 7월까지도 넉넉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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