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태생의 대만계 미국인 앤드류 양(50)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게 제3정당을 위해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7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새 정당을 만들거나 ‘전진당’(Forward Party)과의 협력 관련해 머스크에게 직접 연락했다고 밝혔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와 머스크가 날선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국내외 주류 매체들이 일제히 이들 관계가 ‘끝장’난 것으로 보도한 후 나타난 움직임이다.
법조인·기업가 출신 앤드류 양은 민주당을 나와 2022년 전진당을 설립했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미 정치권에서 여러 차례 시도됐을 뿐 성공하지 못했던 ‘제3정당’의 환경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무르익고 있어 주목된다. 양대 정당의 한계와 폐해에 국민적 공감대가 뚜렷해졌다는 뜻이며 ‘미국엔 더 이상 서민·중산층을 대변할 정당이 없다’는 인식으로 요약된다. 지난 20~30년을 풍미한 글로벌리즘 속에 미국에선 중산층이 몰락하고 갖가지 양극화가 극심해졌다.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제조업 터전을 옮긴 덕분에 대박을 낸 미국인들이 있는 한편, 복지수당과 마약에 기대 살게 된 사람들 또한 대폭 늘었다.
1990년대 이전엔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노동계층과 신흥이민자 권익을 대변하는 정당 이미지가 있긴 해도 공화당·민주당 모두 상식적 시민사회를 추구하는 정당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점차 공존 불가능한 입창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탈냉전 이래 국경을 넘나들며 부와 명예를 축적한 사람들이 민주당에 많아지면서 노동 계층의 지지는 트럼프의 공화당에 쏠리게 됐다. 2016년 4월 다국적 시사 월간지 ‘배너티 페어’에 ‘왜 민주당은 1% (엘리트) 정당이 되고 있나’ 제하의 기사가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해 준다.
작년 11월엔 뉴욕 교외 경합 지역의 팻 라이언 민주당 의원 역시 같은 매체 인터뷰에서 “당내 엘리트가 우리 당의 적(敵)”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앞서 그해 7월 시카고협의회(CC)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자들이 공화당보다 훨씬 강한 글로벌 지향성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조사결과나 분석은 탈냉전 이래 민주당이 경제·기술·문화 엘리트층을 대표하게 된 흐름을 말해준다.
중국공산당과 협력하며 수혜를 누린 이들 글로벌리스트들의 자기정당화에 민주당 측 이념이 더 유리하다는 게 핵심이다. 사업가 트럼프가 ‘서민·중산층을 위한 미국’을 재건한다면서 정계에 뛰어든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트럼프의 정치 행보 중심에 ‘자국민 우선’이 있으며 이는 국경장벽을 낮추고 다양성 가치를 내세운 글로벌리즘에 맞선 ‘자국(서민·중산층) 우선주의’ 운동이기도 했다.
협력 러브콜에 대한 답변 여부를 묻자 앤드류 양은 “아직이다. 그(머스크)가 매우 바빴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미국에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공유해 왔기에 24시간 더 기다리는 게 특별할 것 없다. 미국 정치 시스템의 기능장애와 양극화, 나아가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는 중임을 인지한 사람들과 일하길 원한다”며 이들에 대해 “자신들을 대표할 정당이 없다고 느끼는, 현 양당 체제가 자신들 바람을 실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로 설명했다.
머스크가 6일 엑스(X)를 통해 “미국에서 진짜 중간층 80%를 대표하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 때일까?” 질문을 던지며 온라인 설문을 진행한 뒤, 이튿날 ‘창당을 지지한 응답자 80%’ 결과를 발표하면서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재집권의 1등 공신이라던 머스크가 이제 트럼프 및 공화당과 결별하고 다른 정치세력을 밀겠다’는 뜻으로 국내외 주류 언론에선 보도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로 보긴 어렵다. ‘선출되지 않은 �킴� 기득권 세력’ 척결를 내걸고 정계 입문한 트럼프로선 �킴瑛� 명분을 배척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머스크가 공화당과의 관계를 단절한 지금, 정치 신인들은 미래의 선거를 위해 억만장자의 강력한 자금 지원을 활용할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짚었으나 중요한 관점 한 가지가 빠져 있다. ‘(제프리) 엡스타인 명단’ 관련 이슈다. ‘괴물이 된 억만장자’로 묘사돼 온 엡스타인은 자기 소유 리조트에 전 세계의 각계 지도층·유명인들을 초대해 난잡한 파티를 벌였다고 알려져 있다. 아동성매매로 기소돼 수감 중 2019년 자살한 엡스타인의 초대손님 파일은 폭풍의 눈이다.
해당 명단에 국내외 저명인들 특히 미 민주당계 인사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측되는 가운데, 트럼프 이름도 들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을수록 파일 공개를 요구하는 여론이 힘을 것이다. 관련 게시글에 머스크가 좋아요를 누르고 트럼프는 분노를 표했다. 다만 이들 인연이 애당초 사리사욕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머스크와 트럼프 간 불화를 보도된 대로만 이해하기엔 석연치 않는 구석이 많다. 오히려 이들의 연출이 초래할 예상 외 효과를 전망해 볼 수 있다.
민주당 지지자였던 머스크가 작년부터 트럼프와 공화당을 후원해 대선 승리에 크게 공헌했다. 머스크는 LGBTQX 등을 옹호한 젠더이데올로기나 비판적 인종이론 등 미국판 역사해석 전쟁에 참전해 민주당의 좌경화를 비판하고 이에 맞선 트럼프의 문화전쟁을 적극 옹호해 왔다. 트럼프 대선 압승을 머스크가 “인류의 지속을 위해 잘 된 일”이라고 축하한 맥락엔 동성애에 대한 그의 강렬한 거부감이 녹아 있다
‘크고 아름다운 하나의 예산조정법안’(OBBBA)이란 트럼프1기 때인 2017년 시행돼 올해 말 종료되는 주요 감세안을 연장하고 부채 한도를 5조 달러까지 늘리도록 한 예산법안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활약한 머스크의 방침과 안맞는 대목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두 사람이 갈라섰다고 보긴 대단히 부자연스럽다. 또 세계적 전기차 업체를 �킴으� 머스크가 사익을 추구했다면 애당초 친환경 의제를 사기 취급하며 화석연료 활용을 외친 트럼프를 상대하지 말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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