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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회 현충일 특집(1)] “평택 2함대서 되새긴 천안함 피격의 그날”
326호국보훈연구소 주관 천안함 안보 견학 성료
최원일 천안함장 “NLL, 평화의 선이자 피의 경계선”
천안함 투어로 비극 속 영웅들의 흔적을 품다
장혜원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6-08 17:49:42
 
▲ 최원일 호국보훈연구소장이 평택 2함대 서해수호기념관에서 피격된 천안함 실물을 설명하고 있다. 평택=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제70회 현충일을 맞아 스카이데일리는 326호국보훈연구소(소장 최원일·천안함장)가 주관한 ‘천안함 안보 견학 행사’를 위해 경기도 평택 2함대를 찾았다. 천안함 피격 당시 함장이었던 최원일 소장이 직접 안내자로 나서 당시의 참혹했던 순간과 서해를 수호하다 산화한 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생생하게 증언하며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숙연함을 선사했다.
 
이번 행사는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안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최원일 소장의 이번 투어는 단순히 전시된 유물을 관람하는 것을 넘어, 서해 수호의 역사를 살아 있는 목소리로 듣고 느끼는 뜻깊은 호국보훈 행사였다. 특히 이번 행사가 해군·326호국보훈연구소의 협력으로 진행된 것은 더욱 의미가 깊다. 
 
▲ 최원일 호국보훈연구소장이 평택 2함대 서해수호기념관에서 피격된 천안함 실물을 설명하고 있다. 평택=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천안함 피격 사건은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백령도 서남방 해상에서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에서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된 비극을 일컫는다. 이 고귀한 희생 정신을 기리고 생존 장병들에 대한 예우를 모색하기 위해 설립된 326호국보훈연구소는 천안함 피격 당시 전사자를 비롯한 104명 전우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그들의 명예를 지켜 나가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진행된 이번 ‘천안함 안보 견학 행사’는 326호국보훈연구소의 주관으로 진행되었으며, 대한민국 국민에게 ‘천안함 피격 사건’과 관련된 편향되지 않은 올바른 이해와 안보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참가자들은 최 소장의 안내를 받으며 해군 2함대사령부 서해수호관과 천안함 선체·기념관 및 신형 천안함(FFG-826)을 견학했다.
 
견학의 하이라이트는 비극의 현장이었던 천안함 선체였다. 피격 당시 함수의 앞쪽은 오른쪽으로 기울고, 함미는 급속히 침몰했으며, 폭발의 위력에 찢겨 나간 선체의 처참한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최원일 소장은 “뒤쪽은 뻥 뚫려 물이 바로 들어왔고, 앞쪽은 격실이 많아 몇 시간 동안 버텼다”며 당시 승조원들의 절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선체 곳곳에 남아 있는 참혹한 흔적들을 가리키며 “뒤쪽에서 39구의 시신이, 앞쪽에서 안전 당직자 한 분이 발견되어 총 40분이 여기서 발견되었다”고 말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 최원일 호국보훈연구소장이 평택 2함대 서해수호기념관에서 천안함 내부 유품 및 설치물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평택=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특히 선체에서는 비극적인 사연을 품은 유물들이 관람객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엔진실에서 근무 중 순직한 두 용사가 사용했던 장비들, 화생방 상황에 대비해 닫아 두는 Z-Y 표시가 있는 문, 연평해전 당시 전사자 이송에 사용되기도 했던 침대, 그리고 운동 중 희생된 네 명의 젊은 영혼들의 흔적 등 최 소장의 설명은 각 유물에 얽힌 사연들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는 참혹한 비극 속에서도 빛바래지 않는 생명의 흔적들을 통해 희생된 장병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최 소장은 그곳에서 비상 상황 시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후타실과 헬스 기구가 놓여 있던 공간을 언급하며, 이곳에서 운동 중 희생된 네 명의 젊은 영혼들을 기렸다.
 
또한, 당시 작전에 투입되었던 한주호 준위가 수색 작전 중 전사했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며 실종자 가족들의 간절한 염원에 따라 인양 작전이 시작되었음을 설명했다.
 
뻘과 낮은 시야 속에서 잠수사들이 일일이 체인을 걸어 인양했던 당시의 영상은 참석자들에게 깊은 숙연함을 안겼다. 또한,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한 핀 스테빌라이저가 위로 솟아오른 모습은 버블 제트 폭발의 위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 최원일 호국보훈연구소장이 평택 2함대 서해수호기념관에서 실물 피격 천안함이 전시된 공간 앞에서 46명의 용사를 기리고 있다. 평택=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이어진 천안함 46용사를 기리는 공간에서는 숙연한 침묵이 흘렀다. 최 소장은 “이곳에 적힌 계급은 모두 한 계급씩 추서된 계급”이라며, 당시 최연소 19세부터 최연장 40세까지 46명의 용사들을 소개했다. 그는 특히 시신을 찾지 못한 네 명의 부사관(이창기 준위·최한권 원사·박경수 상사·장진선 중사 등)과 두 명의 병사(강태민 상병·정태준 일병)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경수 상사는 연평해전 생존자였으나 천안함에 승선했다가 희생되었고, 장진선 중사의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찾지 못해 매일 밤 바다에 나가 아들을 부르다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참석자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최 소장에게 2021년 7월, 부인 암 투병으로 안타깝게 사망한 정종율 상사의 사연과, 당시 어린 유자녀들이 이제는 중학교 2학년부터 28살이 된 사연은 유가족들의 아픔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  최원일 호국보훈연구소장이 평택 2함대 서해수호기념관에서 천안함 내부 유품 및 산화한 호국영령 46용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평택=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이들의 유품과 사연은 기념관에서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될 예정임을 알리며, 46용사 합동 영결식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일괄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던 사실도 강조했다.
 
최 소장은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왜 잠수함을 탐지하지 못하고 어뢰를 막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에 답하며 강연을 이어갔다. 그는 “천안함에 탑재된 장비는 70년대 중반 기술로 개발된 중거리 음파 탐지형 장비로, 북한 저주파 어뢰의 탐지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조선 기술은 뛰어났지만, 과학 기술은 미미하여 해외 장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짚었다.
 
이어 새로 건조된 ‘신형 천안함(FFG-826)’은 “잠수함 탐지 능력과 함대공 미사일, 탐지 장비까지 대폭 강화되었으며, 특히 소음을 줄이기 위해 전기 모터를 달아 추진력을 얻는다”고 소개했다. 또한 “수상함이 잠수함을 탐지하면 20km 이상 벗어나 헬리콥터와 P-3 해상초계기로 작전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전술이 바뀌었다”며, 과거의 비극을 교훈 삼아 해군 전력이 발전했음을 강조했다.
 
신형 천안함은 과거 70년대 중반 기술로 개발된 장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잠수함을 잡을 수 있는 획기적인 능력과 함대공 미사일, 탐지 장비까지 갖추어 현재 해군 전력의 핵심으로 거듭났다. 
 
▲  최원일 호국보훈연구소장이 안보 투어 전 서해에서 발생했던 현대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평택=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한편, 견학 전 시작된 최 소장의 강연 핵심은 ‘NLL(북방한계선)’이었다. 최 소장은 “NLL은 일방적으로 남조선과 유엔이 그은 선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일면 맞지만,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고 설명했다. 1953년 정전협정 당시 육상의 군사분계선은 획정되었으나, 해상에서는 양측의 입장 차이로 선을 긋지 못했고, 당시 북한 해군 전멸 상태로 북한 해군 기지였던 30개 섬을 한국과 유엔군이 주둔하다 반환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는 “유엔군 사령관이 우군 함정과 항공기의 북상한계선 설정을 위해 NLL을 설정하고 북한에 통보했지만, 북한은 20년간 이를 지키다가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함정을 도입하며 73년부터 서해 5도를 자신들의 바다로 주장하며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1999년 조선 해상 군사분계선을 선포한 이후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대청해전, 연평도 포격전 등 서해에서 피 흘리는 비극이 반복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 소장은 NLL이 단순히 선이 아닌, 피로 지켜낸 우리의 바다임을 역설했다.
 
최 소장은 제1연평해전 당시 우리 군이 압도적인 전력으로 북한 경비정 6척을 격침이나 반파, 대파시키고도 희생자가 한 명도 없었던 승전이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제1연평해전의 복수를 위해 북한이 2002년 월드컵 기간에 도발한 것이 제2연평해전임을 설명하며, 당시 우리 군이 선제 타격을 하지 못해 더 큰 피해를 입었음을 안타까워했다.
 
당시 북한은 1연평해전의 패배를 분석하여 저격수를 배치하고, 패전한 장병들을 치료하여 승함시키며 보복을 준비했고, 기습 작전으로 357호정에 사격을 가했다. 특히 대청해전에 대해선 “이명박 정부 시기 광우병 시위 등으로 지지율이 낮아지자 국면 전환을 위해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던 때 일어난 사건이라 국민들이 잘 모른다”며 ‘잊혀진 해전’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당시 현장 지휘관에게 북한을 제압할 수 있도록 작전 지침이 바뀌어 즉각 대응했고, 북한 경비정에 5천 발을 퍼부어 제압했다”고 설명하며 승전의 의미를 강조했다. 대청해전 당시 우리 군의 즉각적인 대응은 북한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이는 천안함 피격 사건의 복수로 이어졌음을 지적했다.
 
최 소장은 이러한 대청해전의 패배에 대한 북한의 복수가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이어졌고,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에도 “우리 소행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북한의 오만오판에 의해 연평도 포격전이 발생했음을 지적하며, 비극의 역사가 반복된 원인을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진보와 보수 정부가 희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군인은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켰는데, 정치권은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는 뼈아픈 비판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 서해수호기념관에 전시된 '3.26 기관총'은 천안함 피격 사건의 아픔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 깊은 유물이다. 이 기관총은 천안함 피격 당시 전사한 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가 아들의 사망 보상금과 성금을 기부하여 마련된 것으로, 천안함 폭침일인 3월 26일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3.26 기관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기관총 몸통 왼쪽에는 '3.26 기관총'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평택=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최 소장은 스카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NLL은 단순히 바다의 경계선이 아닌, 우리 장병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소중한 공간이며,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러한 교육과 체험의 기회가 확대되어 더 많은 국민이 서해 수호의 역사를 배우고 영웅들의 헌신을 기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최 소장은 앞으로 △천안함 전상자에 합당한 예우 제도 연구 △천안함 생존 장병과 부상 장병 등 국가를 위해 희생한 청년들을 위한 정책 연구 △천안함 피격 바로 알리기 △천안함 기록 보관(아카이브) 사업 등의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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