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회의가 본격화되면서 노동계와 경영계 간의 힘겨루기가 다시 시작됐다. 도급제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확대 적용 여부, 업종별 차등 적용 가능성 등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기업은 최저임금 수준을 감당할 수 있지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이라며 업종별 구분 적용이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지난달 27일 최저임금위원회 2차 전원회의에서 “올해 최저임금은 이미 1만 원을 넘겼으며, 일본·대만 등 경쟁국이나 주요 7개국(G7) 평균보다 높다”며 “내년에는 관세 위기 등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지불 능력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류기섭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최저임금은 특수형태 근로종사자·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 등 저임금 노동자의 생명줄”이라며 “업종·지역별 차등 적용은 결국 저임금 낙인 찍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최저임금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자와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실이 됐을까.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자영업자들의 부담은 커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1월 자영업자 수는 550만 명으로 2023년 1월(549만 명)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2023년 말까지 회복세를 보이던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11월 570만 명에서 급격히 감소했다. 특히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590만 명), 1998년(561만 명),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600만 명, 2009년 574만 명) 당시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자영업자 수 감소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2023년 한 해 동안 폐업한 자영업자는 100만 명에 육박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최근 폐업사업자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사업자는 98만6000명으로 200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자영업자들은 인건비 부담을 호소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영난의 요인으로 원자재·재료비 부담(22.2%)·인건비(21.2%)·임대료(18.7%) 등이 꼽혔다. 자영업자 A씨는 “최저임금이 너무 벅차서 지난해부터 폐업을 고려했다”며 “막상 지금 폐업하면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할 상황이라 버티고 있는데, 내년에도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더 이상 버티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병덕 경기도 소기업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소상공인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면서 “최저임금을 업종별·지역별·연령별 등으로 구분해 정해야 한다. 내년에 최저임금이 또 인상되면 거리로 나앉는 자영업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빚을 진 자영업자 수가 전체 550만 명에서 약 335만 명 수준으로 추정되며, 이는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위기 요소다. 이들이 채무를 감당하지 못할 경우 2000년대 초의 카드 대란과 같은 전국적인 신용불량자 급증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저임금 인상은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자 중요 정책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들이 또다시 최저임금 정책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소비자물가가 꾸준히 오르는 상황에서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타당하지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숨 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무차별적인 인상은 오히려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다시 노동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은 벼랑 끝에 선 수백만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해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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