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이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 가면서 가장 먼저 들인 게 탁구대였다. 가족과 더불어 평생 탁구를 치면서 사는 게 작은 소망이라고 했다.
탁구가 그렇게 재밌는 운동인가 싶어 나도 한번 해 보자 하고 라켓을 잡았다. 직접 해 보니 탁구란 게 보통 어려운 운동이 아니었다. ‘탁구공 튀듯 통통 튄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듯했다. 공은 나의 제어를 벗어나 제 맘대로 마구마구 튀었다.
지인이 조언하기를 탁구의 기본은 ‘힘 빼기’란다. 초보자는 공을 맞힐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팔에 힘을 주는데 이 힘을 벗어 버리는 게 탁구의 첫 번째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느리게 치는 것을 힘 빼기로 오해하면 안 된다”며 타박을 하는 게 아닌가. 그의 이런저런 코치를 종합해 보니 ‘많은 연습’만이 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많이 쳐 보아야 힘을 뺄 수 있다. 더 정확히는 많이 연습해야 힘 줄 때와 뺄 때를 조절할 수 있다.
어디 탁구만 그러한가.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내게 묻는다. 나 자신도 한참 모자라기에 그 방법을 알려 줄 길은 없다. 사실은 나도 궁금하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다만 하나는 알고 있다. 편하게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것. 시처럼 일부러 의미를 지연시킨 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잘 읽히는 글이 바람직한 글이다.
멋있게 보이기 위해 장식적인 수사를 사용하거나 어려운 단어를 골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장식적인 수사나 어려운 단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잘 읽히게만 쓰면 조금 장식적이어도 큰 문제가 없다. 심지어 어려운 한자어조차 글에 격조를 부여하는 수단이 된다.
그런데 장식적인 글은 대부분 배배 꼬여 있어 한 번에 읽히지 않는다. 단어를 고르는 것만큼 배열이 중요한데 배치·배열로는 자기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으니까 단어에 힘을 주는 것이다.
배열은 그가 얼마나 유식한지 드러내 주지는 못하지만 그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는 제대로 드러낸다. 왜 글 쓸 때 긴장을 할까. 글 쓰는 연습이 충분히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넓은 범위에서 보면 탁구와 글쓰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탁구 연습장에는 코치가 있어 탁구 기술을 가르쳐 주지만 글쓰기에는 선생님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약간의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선생님은 학생에게 글쓰기 기술을 가르쳐 줄 수 없다.
잘 읽히는 글은 코칭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앞선 것이 글 읽기이다. 글쓰기와 관련한 뇌 근육 단련법은 오로지 글 읽기 하나밖에 없다. 글쓰기는 글 읽기에 따라오는 부록에 불과하다.
유식을 드러내고 싶은 글일수록 그 바탕에는 많은 독서를 통한 배열의 자연스러움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독서는 지식도 주지만 좋은 문장을 체화시키는 기회가 된다.
내가 유식하지도 않고 글 읽기도 충분히 되어 있지 않은데 그저 주인 없는 단어라고 해서 마구 갖다 쓰게 되면 그 단어는 어색한 장식품이 되어 순조로운 글 읽기를 방해할 것이다.

어릴 적, 웅변대회 때 연단에 선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연사 힘주어 외칩니다!” 하고 외쳤다. 연사가 힘주어 외친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원고가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 원고가 완성되려면 원고를 쓸 때 힘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힘을 빼려면 글쓰기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 연습은 독서 외에 없다는 것을 이 연사 힘주어 외치는 바다.
잘 읽히는 글을 쓰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정말 잘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정말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아주 아주 잘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아주 아주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임요희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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