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의 제5차 핵협상이 2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다. 중재국 오만의 바드르 알부사이디 외무장관의 21일 엑스(X·옛 트위터)로 발표된 내용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어떻게 어긋나거나 맞물리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지난 수십년 미 중동 정책에서 절대상수인 이스라엘, 그러나 이를 포함해 이 지역에 대한 트럼프의 구상이 역대 대통령들과 다른 차원으로 펼쳐지고 있다. 위협과 회유를 구사 중인 트럼프, ‘이란 핵시설 타격 준비’ 소식을 흘리며 이란을 심리적으로 압박 중인 네타냐후 사이에 ‘기묘한 협업’이 이뤄지고 있는 측면을 놓칠 수 없다.
‘이란 핵보유 절대 불가’를 내세우며 ‘추가 제재’를 예고한 트럼프 앞에 이란이 굴복할 조짐이긴 하지만 얼마나 더 시간을 요할지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독자 행보가 트럼프에게 ‘불편함’과 ‘의외의 효과’를 동시에 안길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달 12일 오만 무스카트에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과 트럼프의 중동특사 스티브 위트코프가 오만을 사이에 둔 채 1차 핵협상을 했고 그달 19일 로마에서 두 번째 협상에 임했다. 3차 협상은 일주일 후 26일 무스카트에서 전문가 기술회의와 함께 열렸으며 이달 11일 무스카트에서 4차 협상을 가진 상태다.
2015년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선 일정한 농도(3.67%)와 보유량(U-235 기준 202.8㎏)이 허용됐으나 트럼프는 이를 아예 폐기하려 한다. 위트코프 특사가 18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단 1%의 농축 능력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란은 미국 요구가 과하다며 반발하면서도 최고지도자 측근이 최근 ‘즉각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핵농축 포기와 감시 수용’ 의사를 밝혔을 만큼 이례적 태도를 보였다. 45년간의 제재 여파가 한계에 달했음을 드러낸 셈이다.
이란은 천연자원(석유·가스 각각 전 세계 4위·2위) 부국이자 인구 9000만 이상을 보유한 나라이면서 미국 주도 경제 제재로 1인당 국민소득이 중국의 절반 수준(5600달러)에 머물러 있다. 작년 대통령선거 결과도 이란 국민의 피로도를 여실히 반영한다. 1기 트럼프가 ‘독소조항’을 이유로 핵합의를 파기한 이래 제재 복원 5년이던 시점이던 이 대선에서 우선 역대 최저 투표율(1차 40%·2차 49.8%)이 이란 유권자들의 절망감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결국 기득권층이 내세운 유력 후보를 제치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하던 마수드 페제시키안 후보가 깜짝 당선됐다.
미국·이란 핵협상에 당사국 이상으로 촉각을 곤두세운 게 이스라엘이다. 이슬람 신정국가 이란의 영향력이 발휘되는 한 이스라엘에겐 안보 위기를 벗어날 길이 없다. 더구나 이란의 지원 아래 이뤄진 하마스의 10.7 기습은 네타냐후에게 정치적 치명상을 입혔다. 건국 자체가 아랍권과의 전쟁이었고 이후 세 차례 전면전을 치르며 생존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자국민 1200명 사망·250명 인질’이 발생한 사태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에 네타냐후는 ‘하마스 완전 궤멸’ ‘배후 세력인 이란 봉쇄’를 외치며 시오니스트 연립정부 지탱을 살 길로 인식한 모양새다.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타격 준비 정황은 이런 가운데 전해졌다. 다만 이것이 트럼프뿐 아니라 이란과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매우 다층적이다. ‘석유 없이 살아갈 국가’를 꿈꾸는 사우디에겐 스타트업의 나라인 기술선진국 이스라엘이 꼭 필요하다. 이스라엘 역시 온건파 이슬람(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으로 나머지 아랍권 국가들과의 공존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절실하다. 이런 구도를 정리한 구상인 ‘아브라함 협정’의 주도자가 트럼프다. 다만 이 모든 게 가자전쟁이 끝나야 진행될 수 있다. 사우디 또한 ‘팔레스타인 형제들’의 고통 속에 이스라엘과 외교정상화를 추진할 수 없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가 21일 두 명의 이스라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란 핵협상 결렬 시 신속히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고 보도했다. 전날 CNN이 미국 정부의 첩보를 토대로 ‘이스라엘군(IDF)이 이란 공습을 위한 준비와 훈련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사실로 확인된 분위기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핵협상 타결 임박’ 대신 ‘곧 결렬될 것’으로 입장을 선회했다고 악시오스에선 전하고 있으나 이것도 판단하긴 이르다.
네타냐후 총리가 금주 초 고위급 내각 인사들과 안보·정보기관 인사들과 함께 “(핵협상 상황을 살피는) 매우 민감한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협상 결렬 즉시 신속한 공습에 나설 태세라는 것이다. 공습이 개시될 경우 군사작전은 최소 1주일 정도 지속될 전망이다. 가자지구 재점령을 목표로 한 대규모 지상전인 ‘기드온의 전차’ 작전이 전개 중인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가 21일 5개월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생존 인질 20명과 살해된 최대 38명을 거론하며 “그들 모두를 데려올 것” “하마스의 완전한 패배”를 자신했다.
이 자리에서 네타냐후는 하마스 지도자 무함마드 신와르 사실 소식도 전했다. 10.7의 기획자이자 실행자인 야흐야 신와르의 동생인 무함마드는 작년 이스라엘 공습으로 형이 죽자 대신 하마스를 이끌어 왔다. 인질 석방 및 휴전 협상에서 강성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던 인물이다. 네타냐후는 이어 “가자지구를 완전히 무장 해제시켜 ‘트럼프 계획’을 실행할 것” “우리 이스라엘을 파괴하려는 정권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를 강조했다.
한편 이스라엘 측 관계자가 “미군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으며 이스라엘 준비 상황도 이해하고 있다. 핵협상 결렬 시 트럼프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승인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20 미 대선에서 트럼프와 지지자들이 ‘당선을 도둑맞았다’며 충격에 빠져 있을 때 네타냐후는 외국 정상들 가운데 제일 먼저 조 바이든에게 당선 축하 메지시를 보냈다. ‘브로맨스’로 불릴 만큼 밀착됐던 네타냐후의 이런 행보에 당시 트럼프는 “막장 수준의 배신”이라고 분노했다. 그 앙금이 ‘네타냐후 다루기’에 어떻게 활용될지도 눈여겨 볼 만하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