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부제 : 파이널 레코닝)’이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 1996년 1편이 개봉된 이래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총 8편이 제작된 최장기 시리즈물 중 하나로 어찌 보면 이 시대 최고 배우의 반열에 올라 있는 톰 크루즈라는 명배우의 삶과 함께한 영화로 ‘007’과 더불어 액션 첩보물 장르의 대명사 같은 영화이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인만큼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은 제외하고 이야기해 보면 부제인 ‘파이널 레코닝(Final Reckoning)’, 말 그대로 ‘마지막 심판’이란 것처럼 전작 ‘데드 레코닝(Dead Reckoning)’에 등장한 인공지능(AI) ‘엔티티’에 의해 핵무기 보유국들의 발사 시스템이 장악된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미 중앙정보국(CIA) 산하 독립작전 부서인 IMF 소속의 에단 헌트와 그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최정예 팀원들이 세계를 구한다는 것이 주요 줄거리이다.
영화의 내용을 떠나 눈여겨볼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AI’의 발전과 그에 따른 위험성이다. 두 번째는 ‘핵무기’의 공포다. 영화 속에서는 우리 대한민국을 항시 위협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도 ‘핵무기 보유국’으로 나온다. 아무리 아니라고 믿고 싶어도 할리우드 영화에서조차 북한은 이미 핵무기 보유국으로 설정되고 있다. 세 번째는 그러한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 중대한 결단을 해야만 하는 미국 대통령과 각료들의 고뇌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적 설정상 전 세계의 모든 컴퓨터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자신을 믿는 사이비 종교까지 만들어 인류를 종말로 이끄는 ‘AI 엔티티’를 속이고 세계를 구하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은 극 속에서나 통용될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고대 그리스 연극의 무대 기법, 기중기 등을 사용해 하늘에서 갑자기 신이 나타나 상황을 해결하는 등의 수법)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3가지, 즉 통제력을 상실한 ‘AI의 도발’ 가능성, ‘핵무기의 공포’는 실제로 현존하는 것이며, 그러한 국가 위기 상황을 안정적으로 통제하고 이끌어 가야 하는 ‘국가 지도부의 고뇌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판단력과 역량’은 영화를 떠나 현실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AI 개발에 있어 아이작 아시모프 교수의 ‘로봇 3원칙’을 한 번쯤은 상기해 볼 필요도 있다. 이제 이것은 더 이상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오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른 반대급부로서의 위험성 증가는 이번 ‘SKT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의 정보가 쉽게 노출될 수는 있는 현실 속에서 AI를 이용한 세뇌 또는 인지전(認知戰)의 가능성,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AI의 자기 진화 위험성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6·3 대선과 관련해 모든 후보가 AI 산업의 발전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우며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모 후보에게 다른 후보가 구체적인 방안을 물어보니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추어 결정하면 된다”는 다소 황당한 답변도 늘어 놓았다. 다시 말해 이는 모두가 “AI” “AI” 하니 AI 산업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국민 세금을 무려 100조 원이나 투자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정작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지향점’과 개발 방향에 대한 ‘과학적 접근 방법’도 구체적으로 수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갑작스럽게 실시하는 대통령 선거로 인해 각 선거 캠프에서 부랴부랴 각종 정책을 만들어 내는 가운데 만들어 내는 가운데 체계적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융합적이며 체계 통합적인 기술적 접근 방법은 마련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대통령이 되면 다할 수 있다”는 식의 답변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톡홀름 신드롬’을 넘어 거의 신앙심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몹시 우려된다.
기술 주권은 단순한 미래 먹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존망을 가를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인 만큼 더욱 냉철하고 정교한 전략 수립과 실질적 실행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리고 여야 모두 ‘빅 텐트’를 이야기하고 있으나 이는 그저 우파 정책과 좌파 정책의 구분조차 모호하게 만들 뿐이다. 결국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현명한 지식인들이 아닌 이름이 알려진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 세를 크게 보이려 하고 있으나 정작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일반 국민에게 있어 이러한 철 지난 정치 놀음은 진부한 행위로 보일 뿐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읊조리듯 나오는 대사 “삶은 하나의 행동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모든 선택의 결과, 그리고 자네의 모든 존재, 자네가 한 모든 일이 여기로 이끈 거지”라는 대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대선 후보들 중에서도 과거의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인물이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닐까.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