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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왔습니다] <53> 공작조 새로 결성… 남파 ‘실전 훈련’ 본격 돌입
김동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15 06:30:00
▲ 김동식 前남파공작원‧대북전략컨설팅 대표
두 번째 공작조 해체
 
다음 날인 198913일 오전, 신정 명절을 집에서 보낸 김명걸이 최 지도원과 같이 승용차를 타고 초대소로 들어왔다. 자식들을 만나러 갔던 초대소 요리사도 다른 차편으로 들어왔다.
 
최 지도원은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어제 부부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갔느냐고 물었다. 간단하게 답하자 부부장이 얘기한 대로 하라고 또다시 당부했다. 그들이 초대소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원국 부부장도 들어섰다.
 
이 부부장은 김명걸과 최 지도원 그리고 나를 동시에 응접실로 불러 회의를 소집하고 모두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상급당 조직의 결정에 따라 오늘 이 공작조를 해산하게 되었소. 조원은 아직 공작원으로서의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앞으로 공부를 더 시키기로 했고, 조장은 간부 현실 체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시키기로 했소.
 
그동안 이 공작조가 일을 잘해 왔는데, 앞으로 서로 갈라지더라도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일을 잘해 주기 바라오. 그리고 조원은 오늘 오후에 다른 초대소로 옮겨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짐을 싸서 옮길 준비를 해야겠소. 모르는 것이 있거나 의견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시오.”
 
초대소 옮겨 제1차 남파 준비하기로
 
나는 이미 부부장이 이야기한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조장 김명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조직의 결정이고 담당 부부장이 제시한 이유도 적절한 것이어서 김명걸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것 같았다. 의견이 있느냐고 묻는 부부장에게 나는 당조직에서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했고 김명걸도 의견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 부부장이 돌아간 후 나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부부장의 지시대로 다른 초대소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이미 그 전날 부부장과 헤어진 후 대충 준비를 해 놓았기 때문에 잠깐 사이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점심 식사 때는 초대소 요리사가 특별히 음식을 준비해 주어 간소하게나마 송별 파티를 했다. 나는 웃는 얼굴로 김명걸과 후일을 약속하면서 악수한 다음 싸 놓았던 짐을 승용차에 싣고 다른 초대소로 향했다. 이때부터 제1차 공작을 위한 남파 준비가 시작된 것이다.
 
새로 구성된 남파공작조
 
남한 침투 준비를 위해 옮겨간 초대소는 평양시 순안 구역의 초대소 지역에 있는 특별초대소였다. 저수지 기슭에 지어진 2층짜리 한옥이었는데, 정원도 크고 방도 여러 개 있어 생활하기 좋은 곳이다. 이곳은 1960년대 후반까지 노동당 대남사업담당 비서를 역임했던 이효순의 전용 별장이었는데 그가 숙청된 후 남한 침투를 준비하거나 복귀한 공작원들의 휴식을 위한 특별초대소로 활용하고 있다.
 
승용차에서 내려 초대소에 들어서니 조장 권중현과 새로 담당하게 될 장은택 지도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권중현은 48세였고, 장 지도원은 50대 후반이었다. 내가 도착하자 장 지도원이 먼저 인사한 뒤 권중현과 나를 각각 소개했다.
 
이 선생은 앞으로 조장으로 일하게 될 박 선생이고, 이쪽은 이 선생입니다. 인사를 나누십시오.”
 
그러자 권중현이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춘봉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앞으로 우리 함께 손잡고 일을 잘해 봅시다.”
 
북한 이름은 박춘봉, 남한 이름은 권중현
 
박춘봉은 권중현이 남한에 침투하기 전 북한에서 공작원 생활을 할 때 사용하던 가명이다. 그리고 권중현은 남한에 침투할 때 신분 세탁용 주민등록증에 기재했던 이름이다. 그러니까 권중현이라는 이름은 남한 사람 이름이고, 나와 처음 만날 당시의 이름은 박춘봉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권중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한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이순섭 지도원으로부터 권중현의 나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40대 초반 정도로 생각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고 상급자인 그가 먼저 나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는 바람에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침착하게, 그리고 권중현보다 더 깍듯이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철호라고 합니다.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사실 권중현은 대남 공작원으로 소환되기 전에 평양시 낙랑구역당 조직비서를 역임했던 인물이다. 그 전에는 외무성 간부과장으로, 1989년 당시 외무성 부상(副相)급 간부들이 신입사원 시절 그들에 대한 인사를 직접 담당했던 고위급 당간부 출신이다.
 
장 지도원은 나와 권중현이 서로 인사를 끝내자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차츰 알려 주겠다며 짐 정리를 하면서 휴식하라고 한 다음 돌아갔다.
 
 
▲ 난수 방송(암호 방송)은 특정한 배열 규칙을 가지지 않는 연속적인 임의의 수인 난수를 암호로 이용해 특정 대상에게 비밀스러운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송출되는 방송이다. 북한은 남파 간첩들에게 지령을 내릴 때 난수 방송을 이용했다. 연합뉴스·스카이데일리.
 
 
남파 준비 위한 실무 교육·훈련
 
이때부터 남파 준비를 위한 실무적인 차원에서의 교육이 진행되었다. 실무 교육이라는 것은 대남 침투 및 공작 임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전술을 어떻게 세우며 북한 공작지도부와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을 것인지 등을 실제 상황과 같이 설정하고 그 방법을 연구하고 숙달하는 과정이다. 물론 그전까지의 교육은 모두 실제 상황과는 거리가 먼 기초 교육이었다.
 
당시 우리가 본격적으로 진행했던 훈련은 본부인 북한에 보낼 보고 전문을 작성하고 그것을 무전으로 송신하는 훈련, 본부에서 보내는 숫자 전문(난수 방송)을 수신한 다음 그것을 한글로 바꾸는 훈련이었다. 숫자로 된 암호 전문을 한글로 바꾸는 것을 변신’(암호해독)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통신 연락과 관련된 것들을 남한에 침투했을 때와 똑같이 실행해 보기 위해 주간과 야간에 평양 시내 주변의 산에 올라가 무전기를 설치하고 송신 훈련을 한 다음 철수하는 동작까지 반복해서 연습했다
 
모스부호 수신, A급 무전수 이상의 수준으로 훈련
 
한편으로는 모스부호 수신 연습을 집중적으로 함으로써 수신 속도를 100자 이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00자를 수신한다는 것은 모스부호로 된 숫자를 1100자까지 받아 적는다는 것이다. 이는 A급 무전수 이상의 수준이다. 아울러 북한 공작지도부에 보내는 보고 내용을 숫자 전문으로 작성하는 연습과 함께, 본부에서 보내는 2·3건의 전문에 대한 변신 연습도 했다.
 
또한 남한에 침투하기 위한 준비를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도 진행했다. 예를 들면 신분 위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할 것인가, 침투 전술은 어떻게 세울 것이며 복귀할 때의 접선은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하는 등의 기초적인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 기초해서 가상(假想) 전술을 수립하는 연습도 했는데, 이와 같은 실무적인 교육과 훈련은 2월 중순까지 계속되었다.
 
침투 및 공작 전술안 ‘액션 플랜’ 작성
 
2월 중순부터는 이미 연습하고 교육받은 내용에 기초해 실제로 남한에 침투해 공작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전술, 즉 액션 플랜을 작성했다
 
침투 및 공작 전술안은 크게 공작 임무와 함께 신분 위장, 침투 전술, 정착 전술, 대상 포섭(전취) 및 조직공작 전술, 통신 연락 조직, 복귀 접선 조직, 비상시 행동 전술 등으로 구분해 항목별로 방안을 수립한다. 이때에는 담당과에서 제시하거나 가져다준 기초 자료에 근거해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 등을 총동원해 작성한다. 그 후 공작조 자체 논의를 통해 1차적으로 완성한 다음 담당 지도원과장부부장 등 단계별로 올라가면서 해당 간부들과 여러 차례의 토론과 합의를 거쳐 최종적인 전술안을 마련한다.
 
당시는 구체적인 포섭 대상 및 정보를 전달받지 않은 상태여서 주로 위장 신분 구상과 침투 지역 및 침투 전술을 작성하고 연락 조직과 복귀를 위한 접선 조직, 일반적인 대상 포섭 전술과 지하당 조직 건설 방법, 남한에 침투한 다음 정착 이후의 생활 방안 등에 대해 연구하고 전술 방안을 수립했다.
 
통일전선부에 흡수됐던 연락부, 사회문화부로 부활
 
나와 권중현이 남파공작조를 새로 편성할 즈음 중앙당 대남공작부서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변화와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1987년 통일전선부에 흡수·통합되었던 연락부가 1989년 초에 다시 사회문화부로 부활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1987년 중반 중앙당 연락부장 정경희가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의 지하공작 경험을 대남 공작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해임되면서 연락부가 통일전선부에 통폐합된 바 있다. 당시 통일전선부·연락부를 통합해서 만든 부서의 명칭은 대외연락부였고 대남담당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허담이 자동으로 대외연락부장이 되었다.
 
정경희는 중앙당 연락부장에서 해임되기 직전인 19874월 김일성 생일 75돌을 맞아 연락부 소속 공작원들에게 훈장과 함께 칼라 TV를 나눠 주기도 했는데 해임되어 공작원으로 다시 임명되었다. 이와 함께 교육 담당 부부장을 비롯해 고위급 간부 여러 명이 해임되거나 강등되었다. 당시 내가 몸담았던 연락부 대남 담당 부부장 이원국도 과장에서 부부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 안 돼 다시 과장으로 강등되었다.
 
연락부 후신 사회문화부의 부장은 김정일의 측근 이창선
 
대외연락부로부터 분리 독립해 나온 사회문화부는 기존에 연락부가 해 왔던 남한 내 지하당 조직(간첩망) 구축 공작 업무를 다시 담당하게 되었다. 기존에 통일전선부가 담당했던 업무는 대외연락부’라는 명칭을 다시 통일전선부로 개칭한 부서에서 그대로 수행하도록 했다. 한편, 연락부의 후신인 중앙당 사회문화부장에는 김정일의 측근으로 정무원(내각)에서 문화예술부장을 맡고 있던 이창선이 임명되었으며, 통일전선부장은 예전대로 대남담당비서인 허담이 그대로 겸임하도록 했다.
 
또한 대남 공작원 및 전투원 양성기관, 즉 스파이 양성기관인 금성정치군사대학의 공작원 양성 기능을 분리해 봉화정치�坪막� 독립시켰다. 봉화정치�坪� 과거 최초의 대남요원 전문 양성기관이었던 강동정치�의 맥을 이어 조국 통일의 봉화를 지펴 올리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20211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후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친 아들과 내가 직접 나눈 대화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으로 본 연재의 각 회차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아들 : 제가 군에 입대했을 때 북한이 대한민국의 주적이라는 정신교육을 하지 않았어요. 저를 포함한 국군 장병들은 휴전선 철책에서 24시간 북한군의 동향을 면밀하게 감시하고 있고 만약 북한군이 도발을 감행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면 곧바로 투입돼 그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 분명한데, 왜 대적관을 심어 주는 정신교육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 네가 군에 입대했을 당시에는 정부가 주적 관념과 관련한 정신교육을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야. 그때는 국방부가 발행하는 국방 백서에서 주적이란 개념을 아예 빼 버릴 정도였으니까.
 
나는 한국에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주적 개념을 가지고 논란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해.
 
북한의 경우 과거엔 내부적으로 주한 미군과 함께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간주했지.구체적으로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이를 떠받치고 있는 관료·재벌·지주 등을 주된 척결 대상으로 규정해 놓고 대적관 교육을 강화했어. 그러다가 202312월 김정은이 직접 대놓고 대한민국을 1의 주적’ ‘불변의 주적이라고 강조하며 북한 헌법에 주적 개념을 반영하라고 지시했어. 아울러 남북 관계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교전 중인 적대국 간의 관계로 규정하고 대한민국을 정복·수복·평정하겠다며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야.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방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고, 대한민국 청년들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국군에 입대한 후 북한군과 맞서 그들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튼튼히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대적관 확립을 위한 교육을 하지 않은 것은 출발부터 잘못된 일이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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