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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102] 계획된 사고
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13 06:22:30
 
 
경찰에 의뢰했더니 다른 사업장에서 해고된 경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오정일은 공표한 대로 이 둘을 해고했다. 그러나 해고된 근로자들은 매일 회사 앞 정문에서 노동자를 억울하게 해고한 악덕 기업주 오정일 물러나라! 복직을 허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오정일은 무시했다. 지옥 같은 악몽은 한 달여 뒤에 일어났다.
 
그 사이, 정일어패럴엔 정식 노조가 설립되었다. 노조는 당장 일당 1000원 인상을 요구했다. 오정일은 경기 불안정, 상반기 시위·집회로 회사가 정상 가동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임금은 하반기에 매출 실적 반영해서 올리겠노라고 약속했다. 근로자 편익을 위한 기숙사 준공 계획도 발표했다. 회사는 노조와 원만하게 합의가 이루어졌고 내부적으로 안정되는 듯 보였다.
 
한 달 이상 해고 노동자들의 회사 정문 앞 시위는 멈출 줄 몰랐다. 7월의 뜨거운 어느 여름날, 복직을 요구하는 해고자 두 명이 뙤약볕 아래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정문 앞 담벼락 아래는 그늘이 없었다. 둘은 검은 우산으로 태양을 가렸고 나중에는 어디서 났는지 파라솔을 가져와 바닥에 꽂아 두었다. 경비원들이 사유재산 위에서 농성하지 말라고 매일 실랑이를 벌였지만 오정일은 그냥 놔 두라고 했다. 그들은 위장 취업에 대해 단 한 번도 잘못했다거나 사과한 적이 없었다.
 
관대함와 처벌을 혼동하고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경영자는 리더십을 잃게 된다고 오정일은 믿었다. 일주일째 단식 농성했던 해고자 한 명이 탈수로 쓰러졌다. 회사에서 응급차를 부르고 병원에서 치료받도록 선처했음에도 노조는 이를 문제 삼았다. 졸지에 잔인한 기업주가 되었다. 탈진해 쓰러진 해고 노동자의 사진이 지역신문에 실렸다. 위장 취업자라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먹을 물도 착취당한 해고 노동자의 처참한 시간이란 제목으로 기사가 나갔다. 회사로 기자들이 몰려왔다.
 
정당한 해고라고 해명해도 소용없었다. 노조는 해고 노동자가 밖에서 단식투쟁한 사진, 병원에 실려 간 사진을 담아 우리들의 미래라는 성명서를 냈고 해고자를 복직시키라는 연판장을 공장 내에 돌렸다. 끔찍한 일은 시간을 끌지 않고 찾아왔다. 함께 단식 농성했던 해고자 김씨가 회사로 찾아 들어왔다. 노조원들이 그를 감쌌다. 매일 회사로 기자가 찾아오는 바람에 그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길은 없었다.
 
회사 대표와 면담하겠다는데 거절했다간 잔인한 악덕 기업주의 민낯어쩌고 하며 기사가 나갈 게 뻔했다. 회사 이미지는 물론 소비자 불매운동이라도 일어나면 회사는 문을 닫는 상황까지 대비해야 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꼬였다.
 
사무실에서 면담하기로 했던 해고자 김씨는 면담 시각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고 사무실 밖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시끄러웠다. 누군가가 회사 운동장에서 오정일, 나와! 라고 외쳤다.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고 직원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직원들은 다가가지 못하고 말리는 모습이었다. 오정일과 임원들이 재빨리 운동장으로 나갔다.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다.
 
휘발유 아니야?”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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