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취재팀=오주한 팀장|장혜원·노태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분열·갈등·증오의 정치’를 끝장내겠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진보 성향의 지식인으로 분류됨에도 2020년 이같은 평가를 내놓으며 사실상 ‘국민통합’의 과제를 안고 탄생한 현 정부에 대해 낙제점을 줬다.
실제 문재인 정부 들어 사회 갈등과 분열은 더욱 심화했다. 천문학적 혈세를 퍼부었음에도 해소되지 않은 일자리문제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과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20차례가 넘는 부동산 정책 규제는 오히려 유·무주택자들 간의 갈등을 더욱 부추겼다.
이념·지역 갈등을 넘어서 남녀가 단지 ‘성별’을 두고 극한 대립을 이어나가는 젠더갈등이 이어졌다. 3년차에 들어선 K방역 시행에 ‘코로나 블루’가 횡행했고 실생활을 파고든 각종 지침은 자영업자 등 국민을 더욱 힘겼게 했다. 영세사업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의 갑작스러운 도입 등 급진적 사회정책이 쏟아지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만갔다.
일각에선 이 같은 분열을 두고 ‘혐오와 증오의 일상화’가 이뤄졌다고도 한다.문 정부 지난 5년간 우리 사회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차기 행정부에선 무엇이 먼저 치유돼야 할까. 분열이란 오명을 쓴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여자는 피해자·남자는 가해자’ 극한 대립 중심의 ‘젠더 갈등’
2017년 대선 기간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페미니스트 선언’에서 시작된 젠더갈등은 이번 대선까지 지난 5년 동안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문 정부 출범 2년째인 2018년 6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혜화역 여성 시위’와 ‘20대 남성(이대남) 현상’이 공론화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혜화역 시위는 여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치러진 가장 큰 규모의 시위로 기록됐다.
같은 해 각종 여론 조사에서 전통적인 진보집단인 20대의 민주당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했고 이들은 ‘안티페미’ ‘보수 우파’의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여성 페미니스트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집단화했다.
문 정부에서 젠더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된 원인은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친(親)여성 편향적 태도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 정부 내에서 임기 중반에는 ‘미투(me too) 운동’이 가시화했다. 각계 지도자들은 피해자 고발에 재판에 넘겨졌고 일부는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성폭력 대응이 시급해졌고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각종 정책이 수립됐다.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잠재적 피해자’라는 구호가 횡행하며 남성에 대한 일종의 ‘성범죄자 낙인 효과’까지 생겨났다.

거기에 더해 친 여성 중심의 정부 운영방안은 남성에게 일종의 소외, 차별, 배제감을 더했다. 내각의 여성 대표성을 강화하면서 여성가족부의 역할이 커졌다. 장관급 고위공직자 여성 비율은 30%, 정부위원회 위원의·40%(2020년) 수준이 됐다. 친(親)여성 정책도 대폭 강화됐다. △경찰대학교·간부 후보 남녀분리모집 폐지 △여성 고위공무원단 및 공공기관 여성 임원 목표제 도입 등이 이어졌다.
페미니즘을 대표로 하는 시민단체들도 가세했다. 이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와 차별, 폭력에 대항해야 한다는 급진적 구호는 일종의 ‘여성에 대한 집단 이기주의’로 해석됐다.
이 과정에서 ‘이대남 현상’을 중심으로 남성들의 문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젊은 남성들은 보수적 모습을 띠게 됐다. 사회·정치적 변화로 영향력이나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반발하고 반격한다는 현상으로서 백래쉬(Backlash)가 ‘반(反)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증폭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이대남 A(29·남)씨는 “문재인 정권 들어 (여성만을 더 챙기는듯한) 여성차별에 분노했고, 젠더를 중심으로 반정부 메시지와 구호를 외치며 뭉쳤다. 점점 더 극단화되어 가는 기분이었다”라고 했다.
‘세금 폭탄·집값 폭등→부동산 정책’·벼랑 끝 자영업자
문 정부에서만 26차례의 부동산 정책이 나왔으나 결국 집값 잡기엔 실패했다. 한국갤럽이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난해 7월 첫째 주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상세사항 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에서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78%, ‘잘하고 있다’는 9%로 국민 절대 다수는 ‘부동산 정책’에 낙제점을 줬다.
2월 국토교통부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2017∼2021년 전국 공시가격별 공동주택 현황’에 따르면, 현 정부 5년 만에 공시가격 9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전국 기준으로 468%나 폭증했다. 집값은 폭등했고, 비싼 아파트일수록 더 많이 늘어났다. 전체 주택 수는 13% 증가했는데, 9억원을 초과하는 주택 수는 82%나 늘어나서다.
문 정부에서 정권 초기 집값 폭등의 원인이 공급 부족보다는 부동산 투기 세력에 있다며 각종 규제를 강화한 게 패착의 원인이었다. 문 정부 출범 1년여만에 부동산 대책이 무려 8번 나왔다. 규제지역 확대나 총부채상환비율(DTI)·담보인정비율(LTV) 축소와 같은 금융 규제, 양도소득세 강화와 같은 세금 규제가 취임 1년여만에 모두 등장했다.
이를 전국 집값 38%를 치솟게 한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국정과제·국민경제·사회정책비서관을 지내며 부동산 정책을 주도했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도했다. 정부는 노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세제 강화와 대출 규제 강화, 금리 인상을 밀어붙였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다주택자’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유주택자를 겨냥한 발언을 쏟아냈고 규제를 강화하자 되레 집값이 더 상승했다. 여기에 더해 종합부동산세가 부활했다. 9·13 대책에서 3주택 이상 보유자와 규제지역 내 2주택 보유자에 대한 종부세 부담을 확 늘렸다.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작품이었다.
결국 월세 수익으로 보유세를 내기 위한 집주인들의 움직임은 다수의 전세 난민을 양산했다. 각종 규제에 집을 보유한 사람은 세금 폭탄에, 무주택자는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에 시달리게 됐다.
전문가들은 집값 폭등이 결국 일방적 부동산 정책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유세를 올리더라도 집주인이 집을 팔 수 있도록 거래세를 내리는 게 담보돼야 했고, 신규 택지 조성과 함께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주택공급 신호를 주는 등 융통성 있는 정책 운용이 필요했는데, 규제를 통한 ‘집값 조이기’에만 사활을 걸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3월에는 이른바 ‘LH 투자공사 땅투기 의혹 논란’이 터졌다. 10여명의 LH 임직원과 배우자가 2018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구에 7000여평의 땅을 100여억원에 사들였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주택 공급을 책임진 공공기관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를 한 사건이었다.
정부가 ‘사회악’이라 취급한 부동산 투기에 공공기관이 결합해 부정부패를 일삼자 국민의 분노와 원성이 높아졌다. 문 정부의 ‘공정’에 대한 신뢰는 산산조각이 났다.

문 정부에서는 자영업자 661만명(2021년 기준)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2020년 초반 터진 ‘코로나19 사태’ 대응이라며 K방역정책이란 이름으로 ‘사적 모임 인원 제한과 식당·카페 등의 영업시간 제한’ 정책을 꺼내들었다.
K방역의 최대 희생자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됐다. 분기별 100만~300만원을 오고 간 손실보상금은 보통 한 달 임차료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심성 돈 풀기란 비난 일색이던 재난지원금은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폐업 시에 금융권에서 얻은 부채를 일시에 갚아야 하는 자영업자들은 폐업 수준에 몰린 업장을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운영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세상을 등진 자영업자들의 소식이 잇따라 들려왔다. 자영업자의 다중채무자 비율과 대출 증가율도 치솟았다. 지난해 3월 자영업자 1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코로나19 방역정책 때문에 자영업자 100명 중 96명이 매출에 타격을 입었고, 약 45%가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올해 최저임금 5.1% 인상이 결정됐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2017년 6470원에서 2022년 9160원으로 41.6% 올렸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와 최저임금 이중고에 대출 돌려막기로 겨우 버티게 됐다. 결국 거리로 나온 자영업자들은 1인 차량 시위, 집단 투쟁, 삭발투쟁을 이어가며 정부에 대립각을 세웠다.
시사평론가로 활약하며 문 정부에 대한 날선 비평을 이어 온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는 스카이데일리에 “정부 방역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게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맞고, 차기 행정부에서는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 이루어지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 정권의 가장 큰 실책은 ‘내로남불’에 있었다”며 “차기 행정부에선 자기편에 대한 준엄한 질책이 필요할 것”이라 조언했다.
퇴직 공무원 B(60·남)씨는 “차기 행정부는 있는 그대로 분열된 한국 사회를 봐줬으면 한다”라며 “초정파적인 기구를 만들고, 한국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실증적으로 조사하고 대책을 모색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성급한 진단과 수술은 되려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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