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익현의 허허실실] 관세 협상과 걸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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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익현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7-31 00:02:59

35년 전 1990년 8월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걸프전이 시작됐다. 걸프(Gulf)는 만(灣)을 뜻하는데 전쟁 지역이 페르시아만 주변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당시 이라크의 통치자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가 국경 지역에 유전을 설치, 자기네 석유를 훔쳐 간다면서 이를 개전 명분으로 삼았다.

후세인은 미국 등 서방이 이라크와 이란 전쟁 때처럼 쿠웨이트 침공을 묵인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미국을 필두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회의를 소집해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을 무효로 선언하고 수출입 금지 등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했다.

침략당한 쿠웨이트는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여기에 나이라라는 15세 쿠웨이트 소녀가 1990년 10월 미국 의회 인권 코커스(caucus·미국 의회 의원들의 모임)에서 증언했다. 이라크 침략군이 쿠웨이트 병원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들을 꺼내 차가운 병원 바닥에서 죽어 가도록 방치했다고 비난했다. 당시 미국은 낙태 논쟁이 한창일 때라 나이라의 증언과 관련 영상은 반향이 컸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나이라는 주미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었고 증언과 영상은 미 대형 홍보회사인 힐앤놀튼이 1070만 달러를 받아 제작했다. 추가 조사 결과 인큐베이터 스토리를 뒷받침할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 국제 앰네스티 등 인권 단체는 조작된 선전을 전쟁 홍보에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침략자 사담 후세인을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조지 부시 미 행정부는 이와 같은 여론을 등에 업고 다국적군을 구성했다. 쿠웨이트로서는 제때, 제대로 된 홍보회사를 고용함으로써 미국 여론을 조작,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미군의 군사 개입을 이끌어내 결국 나라를 되찾았다.

7월31일 오늘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만나 미국의 25% 상호 관세 협상에 들어간다. 우리도 미국 로펌 등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양보하고 내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별로 리스트업 했을 것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미국의 조선업 부흥 프로젝트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제대로 고른 것 같다.

작년 11월 트럼프는 당선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다”면서 미국은 한국 조선업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조선 부문 협력이야말로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 트럼프는 27년 전 50대 초반이던 한창 때 가족과 함께 대우중공업 옥포 조선소를 방문한 기억이 뚜렷할 듯하다.

게다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자(MAGA)’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선 중국 해군이 함정 수에서도 이미 미국을 추월했고 화력 면에서 2년 내에 미 해군을 능가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으니, 우리와의 조선 분야 협력이 더욱 절실할 수 있다. 조선 부문 고용 창출은 트럼프로선 대국민 홍보에도 최적의 아이템이다.

미국을 상대로 한 영국·베트남의 협상은 공급망 제한 등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겠다는 약속을 포함함으로써 많은 양보 없이도 타결에 이르렀다. 이에 착안해 우리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80주년 행사 불참을 미국 측에 시사하면 좋을 것이다. 사실 전승절 열병식은 시진핑이 주관하고 군 사열은 장유샤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맡는다는 설이 나도는 등 중국 내정이 그 어느 때보다 뒤숭숭한데 굳이 거기에 갈 필요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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