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오늘생각] 단재 신채호의 ‘큰 나와 작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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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삶을 건져 올려야 한다

방민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7-10 00:02:55

슬픔과 고통은 사람을 깊이 생각하는 것, 철학으로 이끈다.

이중표의 저술 ‘아함의 중도체계’를 읽는다. 부처님의 음성을 기록한 ‘아함경(阿含經)’을 위시해 ‘중도(中道)’의 사상에 관해 말한 것이다. 첫머리에서 그가 말한다. “진리의 개인주의는 진리의 부재를 의미한다.” 밑줄을 긋는다.

석가는 ‘유무라는 모순된 개념’ ‘모순 대립하는 입장’을 버리고 ‘중도’의 입장에서 철학하고자 했다고 한다. 세계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곧 ‘중도’의 입장이며, 이 입장에서 석가는 삶의 괴로움에서 자기와 중생을 구할 수 있는 원리를 찾아갔다고 한다.

‘진리의 개인주의’가 세상을 휩쓸고 있다. 진실을 외면하고, 불의에 침묵하고, 개인들의 욕망의 도가니가 된 듯한 세상. 이 세상을 어떻게 건너갈 수 있나. 거꾸로 선 세상, 물구나무선 진실을 새로 세울 수 있는 길, 어디에 있나.

뤼순 감옥에 가 본 적이 있다. 거기서 단재(丹齋) 선생과 안중근 의사가 짧은 생애를 마쳤다. 삶과 죽음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감옥이었다. 세상이 있다, 없다 하는 ‘사견(邪見)’에 빠지지 않고 삶의 ‘근본 문제’를 딛고 죽음을 향해 직진한 분들의, 삶의 처절한 현장이 거기에 있었다.

오늘은 그분들 가운데 한 사람 단재 신채호 선생의 글로 돌아간다. ‘큰 나와 작은 나‘(‘大我와 小我’·대한매일신보)에는 젊은 선생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놓고 깊은 고뇌와 공부 끝에 도달한 인식이 담겨 있다.

‘작은 나’가 있고 ‘큰 나’가 있다. 이목구비, 손발, 피부, 내장, 머리카락, 이 뼈와 살, 이 숨결을 가리켜 “이것이 나의 몸”이라 한다. ‘작은 나’, 미미한 나,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세상 어디에도 두루 나타날 수 없는 ‘나’다. ‘나’라는 것이 이토록 작은 존재라면 ‘나’는 비관하지 않을 수 없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만든 신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질적이고, 육체적이고, 껍데기 같은 ‘작은 나’와는 다른 ‘나’가 있다. 정신적인, 영혼적인 참된 나, ‘큰 나’다. 이 ‘나’는 육신이 죽어도 죽지 않고 금과 돌은 죽더라도 죽지 않으며 하늘과 땅이 죽어도 죽지 않는다. 바닷속 깊은 곳에 빠져도, 깊은 땅굴 속에 떨어져도, 칼날과 총포가 덮쳐와도, 독한 역병이 침범해도 ‘작은 나’는 죽지만 ‘큰 나’는 죽지 않는다.

그것은 신성스러운 ‘나’, 하늘 아래 땅 위에 존귀한 ‘나’, 생로병사를 뛰어넘는 ‘나’다. 이 ‘큰 나’는 ‘나’의 정신이요, 사상이요, 목적이요, ‘주의’다. ‘큰 나’는 무한하며, 자유롭고, 자재로운 ‘나’다. “가고자 하면 반드시 가서 멀고 가까움의 제약이 없고, 이루고자 하면 반드시 이뤄서 성공과 실패의 구분이 없다.”

단재 선생의 유고 소설 ‘꿈하늘’(1916)에는 ‘한놈’이라는 한없이 외롭고 고독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한놈’은 소설 속에서 ‘님나라’를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할 일을 찾아 ‘도령꾼 놀음곳’ 앞에 다다른다. 한 장수가 버티고 서서 들여보내 주지를 않는다. ‘한놈’이 어찌해야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자 그가 대답한다. “다른 것 아니라 정이 많고 고통이 깊은 사람”이어야 한다. “눈물 많은 이”여야 한다. “나라 사랑이며, 동포 사랑이며, 대적에 대한 의분”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큰 나와 작은 나’에서 선생은 말한다. “내가 국가를 위하여 눈물을 흘릴진대, 눈물을 흘리는 내 두 눈만이 내가 아니라, 천하 모든 사람 가운데 진심으로 눈물 흘리는 이들 모두가 곧 나인 것이다”고. “내가 사회를 위하여 피를 토할진대, 피를 토하는 내 가슴만이 내가 아니라 천하에 뜻을 위해 피 한 방울 아끼지 않는 자들 모두가 곧 나”인 것이라고. “내게 뼛속 깊은 원한이 있다면, 천하에서 칼을 들고 일어나는 자들 모두가 나이고 천하에서 포탄을 메고 모여드는 자들 모두가 나”인 것이라고.

선생은 말한다. “죽음 속에 삶이 있고, 삶 속에 죽음이 있는 것”이라고. “노래 속에 울음이 있고 울음 속에 노래가 있는 것”이라고. “죽을 나를 아쉬워하지 말고 죽지 않는 나를 바라보라”고. ‘나’의 본래의 ‘참모습’을 깊이 성찰하라고.

아직 어두운 새벽이건만 아침 새의 맑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날마다 듣던 산속의 새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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