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군이 6·25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산화한 호국영웅 11위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국립서울현충원, 국립영천호국원에 안장하며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육군은 16일 국립영천호국원을 시작으로 18일 국립대전현충원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전쟁 전사자 발굴유해 합동안장식’을 엄수했다. 이번 합동안장식에는 유가족과 국방부, 보훈단체 관계자, 장병 등 240여 명이 참석해 선배 전우들의 넋을 기리고 평화로운 영면을 기원했다.
이번 합동안장식에서는 총 11위의 유해가 각각 국립대전현충원(3위), 국립서울현충원(7위), 국립영천호국원(1위)에 안장됐다. 대전현충원 합동안장식은 고창준 육군참모총장 직무대리 주관으로, 서울현충원에서는 김호복 수도방위사령관 직무대리 주관으로, 영천호국원에서는 정유수 제50보병사단장 주관으로 진행됐다.
행사는 국기 및 고인에 대한 경례, 조사, 종교의식, 헌화·분향, 조총 및 묵념, 영현 봉송 순으로 엄숙하게 거행됐다.
이번에 안장된 호국영웅들은 2000년부터 2024년 사이,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전국 각지에서 발굴됐다.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한 유가족의 DNA 정보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감식 작업을 통해 신원이 최종 확인됐다.
故 오두용 하사(현 계급 상병)는 1931년 경남 고성 출생으로, 1951년 적근산 734고지 전투에서 전사했다. 막내 여동생 오점순 씨는 “오빠를 국립묘지에 모실 수 있어 다행”이라며 감격을 전했다.
故 김영기 하사는 1931년 강원 정선 출생으로, 1953년 금성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아들 김성록 씨는 “아버지 사진이 유해를 찾는 원동력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故 주영진 일병은 1932년생으로, 전쟁 발발 직후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해 6일 만에 안강전투에서 전사했다. 친조카 주명식 씨는 “호국의 성지에 삼촌을 모시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故 김익장 이등중사는 1930년 전북 옥구 출생으로, 1950년 38도선 진격작전 중 전사했다. 동생 김삼장 씨는 “형의 유해를 찾은 것은 우리 가족에겐 기쁘고도 슬픈 일”이라고 전했다. 故 이찬규 이등중사는 1923년생으로, 1951년 백선산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번 신원 확인으로 75년 만에 부인과 함께 서울현충원에 합장될 수 있게 됐다.
故 정인학 일등중사는 1932년 전북 정읍 출생으로, 1953년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여동생 정병숙 씨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꿈에 나오셨다”며 오빠의 귀환을 기뻐했다.
故 김석연 일병은 1922년생으로, 1950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딸 김문숙 씨는 “이제야 아버지의 실체가 느껴진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故 강성순 하사는 1931년 경기 고양 출생으로, 6·25전쟁 발발 당일 전사했다. 아들 강기남 씨는 “이제라도 아버지의 유해를 모실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故 함상섭 하사는 1925년생으로, 1953년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아들 함재운 씨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는 소식에 목이 멘다”고 밝혔다. 故 조영호 일병은 1929년생으로, 1953년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형제 모두가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겪었다.
故 박용수 일병은 1928년생으로, 1950년 양양-강릉전투에서 전사했다. 딸 박동옥 씨는 “아버지의 유해가 돌아와 감격스럽다”며, 동생이 영면 중인 영천호국원에 아버지를 모셨다고 밝혔다.
고창준 육군참모총장 직무대리는 “육군 전 장병은 선배님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으로 지켜온 대한민국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국군의 사명 완수에 진력하겠다”며, “아직 찾지 못한 호국영웅님들의 유해를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육군은 앞으로도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에 최선을 다해,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평화로운 영면을 기원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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