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 시절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특히 조선 시대 부분에서 명분과 실리의 괴리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때는 고리타분한 사대의 명분보다는 실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조금 더 깊게 파다 보면 명분이 왜 중요하고 왜 수많은 국가의 지도자들이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였는지 생각하게 된다.
명분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경제학 모델이나 논리 퍼즐에 나오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생물이 아니다. 실리를 쫓는 듯 하다가도 확고한 명분이 있으면 그쪽으로 따라간다.
최근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의 회생 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추진한다. 인수합병이 성사될 경우 MBK가 보유한 2조5000억 원 규모의 지분이 무상 소각된다. 2015년 시작된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가 막대한 손해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는 예전부터 경계의 대상이었다. 사모펀드가 기업을 사들인 다음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판매하는 수익 창출 방법은 위기의 기업에 구원 투수가 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단기적인 성과만 쫓는 근시안적인 운영과 수익성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 등이 있었다.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의 경우 홈플러스의 부동산 자산에 초점이 맞춰졌다. 홈플러스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홈플러스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빠져나가려 한다는 의심이 있었고 실제로 점포 정리가 이뤄졌다. 여기에 홈플러스 회생을 선언하며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돈이 있으면 기업을 살 수 있고 기업을 가지고 있으면 자산을 판매하거나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이치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도 사회이기 때문에 눈치를 보게 된다.
당장 사모펀드의 행태를 비판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모럴 해저드’다.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지만 도덕의 문제는 떼어낼 수가 없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도덕과 국가 경제 기여 등의 명분은 필수적이다.
특히 홈플러스 정도 크기의 기업이라면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정부도 개입하고 구성원들의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MBK의 홈플러스 투자 실패는 기업 인수를 통해 MBK가 돈을 번다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으나 MBK가 돈을 벌면서 사람들이 잘살 수 있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명분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상법 개정안이 재추진되고 대주주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사모펀드의 인수 시도나 지분 가치 제고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지금 시기가 어느 때보다 사모펀드가 명분을 확보하기에 좋은 시기라는 이야기다. 당장 영풍과 손잡고 진행 중인 고려아연 인수전에서도 MBK는 기존 경영진의 전횡과 주주 이익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MBK는 홈플러스 기업 회생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미지가 너무 깎였고 실추된 이미지는 다른 사업에서도 명분 확보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 나아가 사모펀드 전체의 활동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당장 MBK 또는 다른 대형 사모펀드가 새로운 기업을 인수한다고 하면 수많은 반발이 있을 것이고 홈플러스 경우의 재발 방지를 명분으로 실질적인 견제가 들어올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들어가는 시간이나 비용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명분을 잃어버리고 돈만 좇는 행태는 결국 금전적 손해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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