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5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의 서울역-운정중앙 구간은 하루 7만3000명이 넘는 이용객을 기록했다. 이는 평소 평일 대비 약 1.8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이날은 세계적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고양 공연이 열린 날로 서울역에서 킨텍스 인근의 킨텍스역까지 단 16분 만에 도착하는 급행철도가 큰 주목을 받았다.
“처음 탔는데 신세계였다”는 이용자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반응이 넘쳐났고 평소 1호선이나 경의중앙선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말 그대로 교통 해방감이 느껴진 날이었다. 수도권 고속 교통시대의 파워가 체감된 순간이었다.
GTX-A 노선은 현재 수서-동탄, 서울역-운정중앙 등 일부 구간만 개통된 상태다. 그중 서울역-운정중앙 구간은 최고 시속 177km로 총 33.7km를 약 22분 만에 주파하며 출퇴근 시간에는 6분 간격으로 운행돼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구간인 수서-동탄 구간은 상대적으로 이용률이 저조한 편이며 일부 정차역 주변의 환승 불편과 접근성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왕복 요금이 8900원으로 적지 않은 부담이며 진동·소음 등 물리적 보완이 필요한 점은 과제로 남아 있다.
큰 문제는 아직 첫 삽도 제대로 뜨지 못한 B·C노선이다. GTX-B 노선은 인천 송도에서 마석까지를 잇는 구간으로 서울 용산과 남양주 진접 등 수도권 동서를 연결하는 핵심축이다. 최근 민간사업자의 착공 신고서가 제출됐지만 본 공사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GTX-C 노선은 수원에서 양주까지를 연결하며 의정부·양재·삼성·금정 등 수도권 남북을 관통한다. 하지만 전 구간이 민자사업으로 추진되는 탓에 착공 일정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이대로라면 정부가 밝힌 B노선 2030년, C노선 2028년 개통 목표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GTX를 다시 대선 공약 카드로 꺼내 들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수도권 1시간 생활권을 약속하며 A·B·C노선 조기 추진과 함께 수도권 외곽 및 강원도까지의 연장을 공약했다.
김문수 후보는 전국 5대 광역권에 GTX급 노선을 구축하겠다고 하며 ‘GTX 원조’를 자처했다. 실제로 김 후보는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향후 사업의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기존 노선 연장과 신규 D·E·F 노선까지 포함하면 GTX 전체에 필요한 총 사업비는 무려 134조 원에 달한다. 국회에선 예비타당성 조사 생략, 국비 지원 확대 등 재정 건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다. 이 구조는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무리하게 추진된 가덕도신공항 계획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당시 정치권은 가덕도신공항을 부산·경남의 미래라며 예비타당성 조사 없이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결과는 허탈하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공사 기간을 86개월, 시공사는 108개월로 제시하며 기본 설계조차 확정하지 못했고 수의계약도 무기한 중단된 상태다. 2029년 개항은커녕 사업 자체가 무기한 연기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GTX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구체적인 이행 계획과 재원 마련, 그리고 정치의 신뢰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GTX 공약 반복은 정치권의 무책임함을 드러낸다. 공사 지연, 예산 낭비, 지역 간 갈등의 대가는 결국 국민이 떠안는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 했지만 가능성은 실행 가능한 약속 위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을 대선 후보들이 새겼으면 한다.
후원하기